"한국 R&D에는 'R' 은 없고 'D' 만 있어…새로운 화두 창출 못해"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 '쓴소리'
박홍근 미국 하버드대 교수(사진)가 한국의 연구 · 개발(R&D) 능력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7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R&D 포럼 2011'에 참석,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나라 R&D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큰 프로젝트가 정해지면 그에 맞춰 일하는 경향이 있으며,이런 구조로 인해 R&D의 50%는 대기업이 맡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R&D에서 R(research)보다는 D(development),즉 연구보다는 개발에 치우쳐 새로운 이슈를 선점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버드대 화학 및 화학생물학 교수인 그는 단분자 트랜지스터를 고안해 내는 등 해당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한국인으로서는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와 함께 노벨상 후보에 단골로 언급되는 석학이다.

박 교수는 "어떤 목표가 세워진 다음 R&D를 추진하면 연구 인력들의 발상의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신시장을 개척하려면 작고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인에 투자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창조적인 인재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며 이들이 전 세계 R&D 분야에서 새로운 룰(rule)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더 이상 '베스트 팔로어(be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의 애플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나오려면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개인에 투자하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우리나라 나노테크놀로지 R&D는 미국에서 2년 전에 했던 것을 따라하고 있다"며 "항상 R&D의 화두를 잡을 수는 없지만 남들이 만들어 놓은 아젠다를 따라하기보다는 일정 분야에서 리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나치게 안전 지향적인 한국의 R&D 투자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R&D 투자는 결과가 성공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리스크가 높은 것 두 가지로 나뉜다"며 "지금까지는 전자가 주목받았지만 이젠 후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또 R&D의 화두를 만드는 것이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세상에 없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는 것,조금 앵글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