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듯한 상황에서도 곱게 피어나는 사랑과 희망

김인숙 씨 장편 '미칠 수 있겠니' 출간
"살인사건과 지진의 고통을 겪고 나서 더 강한 삶의 애착과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는 남녀를 그렸죠.공포나 슬픔은 거꾸로 묻고 있는 거예요. '미칠 수 있겠니,지금 이 삶에…'라고."

김인숙 씨(48 · 사진)가 신작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를 출간했다. 이국적인 열대의 섬을 배경으로 아픔을 지닌 한국 여자와 현지 남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가는 내용이다. 남편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 '진'은 어느 날 살인사건에 연루된다. 섬에서 가구 공장을 운영하는 남편을 만나러 왔다가 남편이 '하녀'라고 부르던 열아홉 살 소녀가 임신한 채 남편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소녀는 곧 칼에 찔린 사체로 발견된다. 7년 후 사라진 남편을 찾아 섬을 수시로 드나들던 진은 자신보다 한참 나이 어린 택시기사이자 가이드인 이야니를 만나게 되고 둘은 끔찍한 대지진과 쓰나미를 함께 겪는다. 가난한 이야니는 재혼한 어머니와 첫사랑 수니를 떠나보낸 기억을 갖고 있다. 둘은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있는 인물이다.

소설에서는 구체적인 지명이 언급되지 않지만 이 소설은 김씨가 인도네시아 발리의 매력에 푹 빠져 쓴 작품이다. 5년 전 발리를 찾은 후 수차례 방문하다 지난해에는 내륙 지역인 '우붓'에 4개월가량 집을 빌려 집필에 몰두했다.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발리는 특이하게 힌두교도들이 많은 곳이죠.집집마다 가족 사원이 있고 별도의 언어를 사용해요. 말에는 과거와 미래 시제가 없고 주로 현재형을 쓴대요. '어제 비가 와요'라는 식이죠.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첫째는 와얀,둘째는 마데,셋째는 뇨만,넷째는 크툿이라는 이름을 붙여요. 다섯째는 다시 첫째로 돌아가죠.'신들의 섬'이라고 부르며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모두 관광객을 위한 곳입니다. 그곳 사람들의 세계와 의식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그는 1년 내내 똑같은 햇살과 한낮 소나기가 쏟아지는 섬의 풍경을 '낯선 공간'으로 잘 활용했다. 또 장기간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돈을 주고 현지인을 하인이나 애인으로 삼는 모습,관광산업에 의식주를 의존하고 있는 섬 사람들의 삶 등 보고 들은 발리의 모습도 덧입혔다.

공교롭게도 지난 3월 일본에서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하면서 그는 출간 시기를 더 늦출지 고민했다. 자칫 홍보 도구로 비쳐질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일본 지진 소식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어요.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참혹한 장면들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게….그런데 한 노부부가 쓰나미가 몰아닥치는 상황에서도 손을 잡고 놓지 않던 장면을 봤습니다. 바로 그런 느낌을 소설에 담아내고 싶었거든요. "김씨는 스무 살 때인 1983년 등단해 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아직도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힘을 빼거나 쉴 때가 아니라 굉장히 긴장할 때인 거죠.후배들 소설도 챙겨 읽고 무지하게 질투하고 그래요. 요새 TV프로그램 '나 가수'를 즐겨 보는데 가능하면 저도 판타지나 로맨스 등 다른 장르의 소설에 도전하면서 변해보고 싶습니다. 발라드 가수가 힙합에 도전하는 것처럼요.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