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북정책 '거래'로는 안된다

MB정부 비밀접촉은 순진한 발상…北 정권유지 전략 휘말리지 말길
지난달 이명박 정부가 북한당국과 비밀접촉을 한 사실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북한 방송은 남측이 "돈 봉투로 남북정상회담을 유혹하고 천안함 · 연평도 도발사건에 사과를 해 달라고 애걸했다"고 북한식으로 까발렸다. 이 정부가 그간 '핵 포기,선(先)개방' 대북정책의 원칙을 잘 고수하다가 미련을 못 버리고 북정권 같은 집단과 몰래 접촉한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 4년간 보수우파로서의 가치와 정체성이 조각조각 찢겨간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자존심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이는 남한의 안보와 북한인민의 존엄성을 동시에 보장하려는 정도(正道)의 원칙이며 국민의 지지도 받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원칙이 지켜질 경우 "북한 주민소득 3000달러를 실현시켜 주겠다"는 통 큰 약속을 했다. 비밀접촉이 폭로된 바로 전날에도 베를린에서 "북한은 국민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진정한 마음이라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는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대화재개 조건이다. 북 정권의 목적은 오직 김씨 왕조의 유지와 세습뿐이다. 핵은 이 체제를 떠받치는 힘이니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개혁 · 개방은 자유와 인권사상을 북에 몰고와 김씨 정권을 뒤흔들 것이다. 북한국민의 권리가 증진될수록 왕조체제의 기반은 붕괴된다. 그러니 북 주민의 행복,3000달러 소득 따위는 북 정권에 하나도 유혹이 안 되는 보상이다.

북한이 대화에 나서는 이유는 오직 '돈' 때문이다. 김정일 체제는 주민을 배급의 끈으로 묶고 당,군,행정 조직으로 이들을 감시 압박함으로써 유지된다. 따라서 거대한 통치자금 금고가 필요하며 금강산관광,개성공단,마약,밀수,위폐 등 모든 사업수단으로 돈줄을 마련한 것이다. 북한의 진정성이란 이 통치금고를 채워주면 대화하고 안 주면 포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친북집단이 요구하는 바는 바로 이런 북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것이다. 북한체제는 변화가 불가능하니 이를 인정하고 동포끼리 화해 · 협력의 길을 트라는 것이다. 바로 과거 김대중 · 노무현 정권이 선택해 '햇볕'으로 포장한 노선이다. 그 결과 김정일 정권은 오늘까지 연명되고 북의 개방은 연기됐다. 결국 남한은 북 정권에 통치자금을 대주어 남한의 평화를 사고,대신 북 인민을 팔아먹은 꼴이 된 것이다.

오늘날 대북지원 원칙론의 가장 뼈아픈 비판은 소위 "북 주민이 굶어죽게 생겼으니 일단 살려놓고 보자"는 주장이다. 죽고 나면 인권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일견 인도적으로 보이는 이 주장은 인질이 죽고 나면 허사이니 인질범 체포 작전을 포기해야 된다는 이론과 같은 것이다. 이리 되면 북 동포는 영원히 인질의 삶에서 탈피해 자유인으로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기회를 잡을 수 없게 된다.

북한 인민의 이런 기회는 오늘날 하루하루 사라진다. 만약 개방경제로 나가면 북한에는 거대하게 투자 · 지원할 동포가 있지만 그 기회는 다리 밑 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북 정권이 존재하는 한 머지않아 캄보디아 스리랑카에도 뒤지게 될 것이며 북 동포는 통일 후 하등국민으로서 몇 세대를 더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 북 동포가 이 지경에 빠진 것에 대해 어떤 이유로든 그간의 남쪽 정권이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 향후에도 북 체제가 변하지 않음이 확실하다면 우리 대북정책이 이 길로 또 들어서서는 안 된다. 이 정부는 이번에 북한에 뜨겁게 데었으니 다시 무의미한 일은 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평양 당국은 내후년 남쪽에 친북 정부가 다시 들어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 여당의 가장 우세한 대권후보는 그간 북 정권의 행태에 아무런 비판적 입장도 표명한 바가 없다. 국민은 그의 대북정책 이념에 대해 조속히 알아야 할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경제학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