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깨진 유리창 이론

한적한 골목에 두 대의 중고 자동차를 보닛을 열어 놓은 채 놔뒀다. 그 중 한 대는 유리창을 조금 깨뜨려 놓았다. 1주일 동안 지켜본 결과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유리창이 온전한 차는 처음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반면 깨진 차는 고철과 다름없이 파손됐다. 다른 유리창까지 몽땅 훼손된 건 물론 낙서 투성이에 배터리,타이어까지 없어져 버렸다. 1969년 미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한 실험이다.

유리창을 조금 깨놓은 게 걷잡을 수 없는 파괴로 이어진 것이다. 미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여기에 착안해 1982년 '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작은 무질서와 사소한 범죄를 방치하면 심각한 범죄로 번진다는 이론이다. 강력범죄 빈발로 골머리를 앓던 뉴욕시는 1990년대 이 이론을 실제로 적용했다. 지하철 낙서와 무임승차,신호 위반 등을 철저하게 단속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인구 10만명당 살인 건수가 1990년 30.7건에서 2005년 6.5건으로 급감했다.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가 늘고 주거환경이 개선되는 등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는 반론도 있지만 깨진 유리창 이론 도입이 범죄 감소에 크게 기여했다는 의견이 대세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기업 경영에 슬쩍 접목한 이는 마이클 레빈이란 마케팅 전문가다. 그는 회사의 미래 전략을 잘 짜는 것 못지 않게 '깨진 유리창'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한두 번의 실수,한두 명의 불친절한 직원이 회사의 앞날을 좌우한다는 주장이다.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식당의 70%가 평균 2년 만에 문을 닫는 이유도 작은 잘못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부정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면서 삼성테크윈 사장을 경질하고 강도 높은 감사를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부정부패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룹 내 '깨진 유리창'의 싹을 도려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느슨해진 그룹의 '군기'를 잡기 위해 일벌백계 차원에서 징계를 한 셈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해야 할 곳은 주변에 널려 있다. 법을 우습게 아는 일부 의원,규제를 교묘하게 사용(私用)하는 공직자,거기에 기생하는 사람들이 사회 전체를 혼탁하게 만든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도 당초 작은 비리에서 부패 고리가 형성됐을 게다. 기업이건 사회건 이런 '틈'을 초기에 틀어막지 않으면 건강하게 유지되기 어렵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