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55) 한안국(韓安國), 갈등 조정능력 뛰어난 보수주의자

漢에 특채돼 흉노족과 화친 이끌어내
전한 무제(武帝) 때의 일이다. 당시 정국을 주름잡은 두 권력자가 있었으니 문제(文帝) 황후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과 경제(景帝) 황후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이다. 이들은 모두 외척으로 최고의 권좌에 오른 시기였다. 이 중 나이가 많은 두영은 사양길에 든 고참이었고,전분은 욱일승천하는 신진이었다.

어느 날 두영의 친구인 장군 관부(灌夫)가 고관대작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전분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두영을 무시한 한 고관을 관부가 한참 힐책하고 있는데 전분이 그를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분은 키가 작고 못생긴데다 귀족 자손이라 거만했다. 관부가 한사코 사과하기를 거부하자 이 일은 무제에 의해 논의에 부쳐졌다. "경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에 잘못이 있는 것 같소?"무제의 말에 지는 해 두영은 관부를 보호하고 있었는데,소신파인 급암 역시 두영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영의 추종자였던 정당시(鄭當時)도 우물쭈물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사이 누구나 전분의 편이라고 생각한 한안국(韓安國)은 양쪽 다 일리가 있고 판단은 무제가 하라고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중신들의 불분명한 태도에 실망한 무제가 떨치고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가자 논의는 거기서 끝났다.

문제는 전분의 태도였다. 본래 자신이 뇌물을 받고 한안국에게 자리를 준 것이었으니 당연히 자신의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한안국이 애매한 자세를 취하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한안국은 자신을 나무라는 전분에게 자중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사과까지 받아낼 정도로 배짱이 있었다.

안국(安國)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나라를 편안하게 잘 다스리는 일에 힘을 쏟은 보수주의 관료이지만 자기보다 현명하고 청렴한 인사들을 추천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사기 한장유열전》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한번은 한안국이 법을 어겨 벌을 받게 됐다. 이때 몽현(蒙縣)의 옥리 전갑(田甲)이 그를 모욕하자 "불꺼진 재라고 어찌 다시 타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그러자 전갑이 기고만장하게 "그러면 즉시 거기다 오줌을 누겠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양나라 내사의 자리가 비게 됐고 한안국이 기용됐다. 죄인에서 2000석의 녹을 받는 고관이 된 것이다.

전갑이 도망치자 한안국이 "돌아오지 않으면 너의 일족을 멸하겠다"고 겁을 줬다. 전갑이 이 말을 듣고 겁에 질려 돌아와 어깨를 드러내고 사죄했다. 한안국은 웃으며 "오줌을 누라. 너희 같은 무리를 데리고 따질 것이 있겠느냐"며 모든 것을 묻어두고 잘 대우해 주었다.

한안국은 주변 사람들의 갈등을 잘 해소해주는 처세 능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양나라에서 한나라로 특채됐다. 그는 거기서도 공을 세웠다. 당시 흥성하던 흉노족과 맞서려는 황제를 말려 화친을 이루도록 한 것도 그의 공이었다. 그는 늘 신중한 언행으로 양쪽의 장단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소신있는 행보를 이어간 인물이었다. 조직을 안정시키고 주위를 편안하게 하는 조정능력을 갖춘 사람을 현명한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한다면,한안국은 뛰어난 보수주의자임이 분명하다. 대범하고 현명하고 양보할 줄 알아야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고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인데,한안국은 분명한 소신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으니 말이다.

'반값 등록금'이니 적립금이니 법인화니 저축은행이니 하는 말들이 연일 회자되고 있다. 여당과 야당뿐만 아니라 해당 부처도 그럴듯한 말들을 쏟아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저마다 이기주의에 함몰돼 있다. 국민이나 대학생,서민은 안중에 없다. 양자의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양보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현명한 대안을 내놓을 사람은 없는 것인가.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