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법 개정 재추진 왜…"의약품 구입 국민 편익 무시" 여론 악화

MB 질타도 부담된 듯
의약품은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의약외품 등 세 가지로 분류돼 있다. 전문의약품은 의사 처방전에 따라 약사가 팔도록 돼 있다. 일반의약품은 처방전이 필요없지만 약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고,의약외품은 지금도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의약외품은 붕대나 소독약 등과 같이 의약품은 아니지만 인체에 직접 닿기 때문에 일반 공산품과 별개로 관리해야 하는 품목을 말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일 '국민 의약품 구입불편 해소방안'을 발표할 당시 내놨던 카드는 '의약품 재분류'였다. 현행법상 의약품 재분류는 법 개정 없이 장관 고시만으로 가능하다. 복지부는 '까스활명수' 같은 액상소화제와 '마데카솔''안티프라민'등의 외용제,박카스로 대표되는 자양강장제 등 28개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감기약이나 해열제 진통제 등 중추신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품목에 대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슈퍼마켓 판매가 불가하다는 쪽으로 입장 정리가 이뤄졌다.

하지만 복지부의 이 같은 방침이 알려지면서 국민 여론이 악화됐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진수희 복지부 장관을 거세게 질타한 데 이어 법 개정을 재추진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의사들도 복지부의 방침에 강력 반발했다. 복지부가 약사들을 달래기 위해 전문의약품 중 일부를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의사 처방전 없이 약사가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이 늘어 의사의 권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 개정이 아닌 의약품 재분류라는 방법을 택한 것 자체가 약사회의 로비력에 복지부가 밀렸기 때문이란 게 의사회 측 분석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국민들의 의약품 구입 불편이 진정으로 해소되려면 먼저 법 개정을 통해 약사들이 의약품을 독점 판매하도록 한 현행 구조부터 깨야 한다"며 "의약품 재분류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관할 부처인 복지부가 의사와 약사 등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에게 휘둘려 정부 정책이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편 복지부는 오는 15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를 열고 의약품 재분류 등에 대한 논의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재분류뿐만 아니라 '약국 외 판매약(자유판매약)'이란 새로운 분류 항목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과 그에 따른 대상 품목,판매 장소 및 방법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