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바보공화국의 분주한 나날들 Ⅱ

바다를 수족관으로 만드는 정부
기업생태계 규제의 迷宮 속으로
주자학자들이 체벌 논쟁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교사에게 맡겨버리면 그만이지만 완벽주의자인 교육감은 체벌에 대한 엄중한 규정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우선 체벌 대상 행위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필요하다. 비위 행위는 유형별로 정리되고 통계처리가 진행된다. 회초리의 종류에 대한 연구부터 필요하다. 박달나무에서부터 대나무에 이르기까지 제작 가능한 무수한 재질의 회초리가 역시 유형별로 정리된다. 학생의 신체발달에 대한 전문연구가 뒤따르고 체벌 부위에 대한 체육학적 소견도 필요하다.

체벌 방법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요망된다. 회초리를 내려치는 다양한 자세에 대한 도해가 교사들에게 배포된다. 체벌의 강도와 다른 학생들에게 미칠 심리적 충격에 대한 치밀한 심리학적 논문들도 쌓여간다. 그렇게 연구는 계속된다. 아뿔싸! 학생들의 수용태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연구와 여론조사를 잊을 뻔했다. 그래서 매 규정마다 치열한 논쟁과 복잡한 조사가 진행된다. 규정집은 점점 복잡해져서 드디어…! 학교 도서관을 빼곡하게 채우게 된다. 이렇게 바보들의 체벌규정은 점점 완벽해진다. 지금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만들고 있는 동반성장위원회가 하는 일도 그렇다. 우선 대기업이 진입해서는 안되는 고유업종을 정한다. 간장 된장에서부터 문구류 주물 금형 레미콘 발광다이오드(LED) 등에까지 중소기업들의 동업자 조합이 있는 곳에서는 모두 "우리요 우리!"라며 영업구역을 정해달라고 요청한다. 모두 230여개 품목이 대상 업종으로 신청되었다. 표준 품목으로 재정리하면 1000가지도 넘는다. 중소기업 범위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자본금으로 정할지 종업원 수로 정할지에서부터 업력과 시장구조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시장은 협소하지만 첨단 제품인 경우에 대해서도 종목마다 기준과 예외가 있어야 한다. 수입품이 존재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준과 예외들도 정비되어야 한다.

아차! 대기업에 납품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 독자 납품은 되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은 안되는지에 대해서도 미리 정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만들고 대기업이 시장에 팔아주는 상품은 어떻게 할지,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세계시장에 내놓는 상품에 대해서도 예외를 둘지도 토론해야 한다.

적합업종 제도의 근거법을 중소기업기본법으로 할지 공정거래법으로 할지도 정한다. 그렇게 동반성장위원회는 정말 미치게 바빠진다. 시장은 진화적이고 유동적이어서 오늘의 사치품이 내일의 일용품이 된다는 것을 말해 주어도 바보들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다. 협소한 내국시장에서의 중기제품이 개방체제에서는 수입상품으로 대체될 뿐이라는 사실도 그렇다. 오랫동안 고유업종 제도를 유지한 결과 형광등이나 문구류 등 대부분 고유업종 시장이 모두 외국 대기업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말해 주어도 소용이 없다. 중소기업에 대한 수백 가지 지원제도가 피터팬 증후군을 낳고 기업을 조합으로 만들며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호소는 쇠귀에 경읽기가 된 지 오래다. 중견기업이 되면 200여개 지원이 끊어져버리는 현행 제도가 수많은 중견기업을 종소기업으로 재분할하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되면 이번에는 수십 가지 규제가 새로 들어오기 때문에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댐 밑에는 중견기업들이 또 오글오글 모여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된다. 그래서 기업 생태계에서는 자연도태도 진화도 부정된다. 이것이 중소기업을 수족관 물고기와 유사한 처지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척한다.

바다를 수족관으로 만들고 호수를 연못으로 만들어 간다. 대자연을 동물원으로 바꿔놓으면 과잉번식 현상이 일어나지만 남의 탓으로 돌린다. 중소기업들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진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한국의 된장 회사가 절대 탄생할 수 없다. 바보공화국은 그래서 오늘도 분주하다.

정규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