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포퓰리즘 꾸짖는 포퓰리즘

"대학 등록금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될 것이다. 등록금 문제가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

안형환 한나라당 대변인이 지난 12일 등록금 부담 완화 대책과 관련,황우여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 의장단 등과 회동을 가진 뒤 브리핑에서 민주당의 반값등록금 정책을 비난하면서 낸 논평이다. 그런데 이 논평에 비판을 쏟아낸 건 야당이 아닌 동료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한 친이계 의원은 "우리가 민주당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반값 등록금 정책 내용은 다 똑같은 얘기 아니냐"고 했다. 또다른 의원은 "책임있는 집권 여당은 이러면 안 된다"며 "대안없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표만 의식하는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내에서 이 같은 말들이 나오는 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등록금 완화 정책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결국 재원을 모두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전날 반값 등록금을 내년에 곧바로 시행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국 · 공립대엔 정부가 1조7000억원의 예산을 직접 배정해 주고 사립대에는 '고등교육 재정교부금'을 조성,6조원을 지원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개인과 기업이 기부할 경우 전액 소득공제해 주는 방안도 덧붙였다.

한나라당의 대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부금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 주거나 정부 예산으로 직접 지원하는 등 검토하고 있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무엇으로 부르든 결국 모두 세금에서 가져온다는 말"이라고 했다. 등록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거론하고 있기는 하지만,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도 양쪽이 똑같다.

상황이 이러니 한나라당이 등록금 정책으로 민주당을 비난하는 걸 두고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들어간 티를 비웃는 격"이라는 지적이 들리는 건 당연하다. 서로 다른 점이 없는데,무엇으로 비판할 수 있냐는 얘기다. "적어도 우리는 한나라당을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민주당 당직자의 말이 더 크게 들린다.

김재후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