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제약산업] (上) 제약사 '약값 인하 쇼크'…3곳 중 1곳 문 닫을 판

● (上) 사업 기반 뿌리째 흔들

사업할 맛 안난다
"뒷돈 대고 배만 불렸다" 눈총…정부 R&D기업 지원도 '말뿐'

도매상으로 전락
오리지널 신약 들여와 판매…중소업체는 신제품 출시 중단
"국내 제약산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인수 · 합병(M&A) 대상에 오르내리는 중소 제약사들을 보세요. 서로 먼저 내 회사를 사 가라고 난리입니다. 이러다간 수년 내 토종 제약사 3곳 중 1곳은 문을 닫을 겁니다. "

중견 제약업체 A사의 B대표는 "창립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를 시장에 내놓을까 고민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B대표가 고민에 빠진 것은 정부가 시장형 실거래가 상한제(저가구매인센티브제),리베이트 쌍벌제 등을 무기로 약가 인하 드라이브를 걸면서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토종 제약사들은 병원 · 의사 · 약사에 뒷돈을 대주며 자기 배만 불렸다고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는 점도 사업 의욕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다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제약사의 30%인 70여곳이 M&A 등 제약업계의 구조조정으로 머지않아 퇴출될 것"(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라는 보고서까지 나왔다.

114년 전통의 국내 제약업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저가구매인센티브,약가 인하,리베이트 쌍벌제 등이 한꺼번에 몰아치면서 근간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토종 제약업이 뿌리째 뽑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정권 바뀔 때마다 '약값 내려라'정부는 적자로 돌아선 건강보험재정 안정과 제약산업 선진화를 약가인하 정책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선 토종 제약사들만 무차별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오리지널 의약품은 연구 · 개발(R&D) 단계부터 상품 출시까지 평균 15년이 걸리고 비용만 수백억원 이상 들어간다.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신약이 아직까지 15개에 불과한 이유다. 하지만 외국계 제약사들이 한 해 국내에 들여오는 신약은 20여개가 넘는다. 국내사로선 어쩔 수 없이 특허가 만료된 신약의 제네릭(복제약) 개발로 이윤 창출을 늘려왔다.

중소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가인하' 발표가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라면서 정작 R&D 투자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말뿐"이라고 씁쓸해했다. 2006년 시행된 '5 · 3 약제비 인하정책'으로 특허 만료 시 의약품 가격이 오리지널의 경우 80%,제네릭은 68%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에 따라 2006년 이후 국내 상위 제약사의 주력 의약품(제네릭) 가격은 2006년 대비 평균 35% 선까지 떨어진 상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80여개 주요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15개국의 약가 수준을 조사한 결과 작년 기준으로 한국 약가 수준은 미국의 33%에 머물고 있다. 독일에 비해선 57%,일본의 49%에 그치는 등 주요국에 비해 국내 약가는 평균 69.6% 수준이다. ◆'도매상 전락' 토종 제약사

토종 제약사들의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평균 두 자릿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을 기록했고 마이너스 성장한 제약사가 속출했다. 중소 제약사의 경우 새로운 제품 발매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다국적 제약사가 보유한 오리지널 의약품을 국내에 들여와 파는 도매상으로 전락한 곳도 부지기수다. 토종 제약사 가운데 그나마 실적이 좋았던 제일약품의 경우 지난해 매출 9.8%,영업이익 41.1%,순이익 70.0% 증가로 고른 성장을 거뒀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국적 제약사의 수입의약품(완제품 기준) 판매 비중이 전체 매출(4313억원)의 43%나 된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이처럼 외국계 오리지널 신약을 대행 판매하는 회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