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고음 넘나드는 벨칸토 오페라의 진수 보여준다

한경·글로리아오페라단, 벨리니 걸작 '청교도' 공연
23~26일 예술의전당…시그나 등 유명 뮤지션 출동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마지막 걸작 '청교도(I Puritani)'가 오는 23일부터 나흘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창단 20주년을 맞은 글로리아오페라단과 한국경제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작품은 아름다운 선율과 고난도 기교를 자랑하는 명품 레퍼토리다. 17세기 영국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개혁을 부르짖는 청교도 의회파 성주의 딸 엘비라와 왕권을 수구하려는 왕당파의 기사 아르투로의 전쟁 중에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벨칸토 시대의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선율로 '벨리니의 백조의 노래'라고 불리기도 한다.

벨리니는 자신의 슬픈 사랑 이야기처럼 '카플렛가와 몬테규가''몽유병 여인''노르마' 등 진지하고 비극적인 오페라만 써왔다. 나폴리음악원 재학 시절 재판관의 딸과 사랑에 빠졌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던 아픔은 그의 음악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35년 서른네 살로 세상을 떠나기 8개월 전 파리 이탈리앙극장에서 초연한 '청교도'는 그의 오페라 작품 중 유일하게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실연으로 광란에 빠진 여주인공 엘비라가 기적적으로 자신 앞에 돌아온 아르투로 덕분에 정신을 되찾고 사랑을 이루게 되는 줄거리다. 광기와 천재성을 신성시했던 낭만주의 시대인 만큼 19세기 전반의 벨칸토 오페라에는 실성한 주인공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 젊고 순수한 주인공이 불합리한 세상 때문에 미쳐버리면 관객들은 기꺼이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쳤다고 한다.

'청교도'는 벨칸토 오페라 최고의 보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떤 장면을 떼어 놓고 봐도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것.성악을 살리기 위해 오케스트레이션 비중을 의도적으로 줄여 베르디의 오페라처럼 박진감은 떨어지지만,매혹적인 선율만으로도 관객을 빨아들이기에 충분하다.

오페라 평론가 이용숙 씨는 "벨칸토 창법에서는 성량을 치밀하게 조절하고 뚜렷한 발음으로 빠른 구간을 명료하게 전달하면서 레가토를 구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에서 최고의 테크닉과 가창력을 지닌 성악가들이 부르는 두 곡의 아리아는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힌다. 왕당파의 기사 아르투로가 청교도이자 엘비라의 아버지인 성주 발톤으로부터 결혼을 허락받고 성에서 부르는 사랑의 아리아 '아 사랑스런 그대여,그대에게 사랑을'은 고도의 균형미를 자랑한다. 엘비라가 부르는 카바티나 '그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는 광기 속에서도 잃지 않은 귀족적 우아함을 보여준다.

아르투로 역은 알레산드로 루치아노와 지안 루카 파솔리니가 번갈아 맡는다. 이들은 '하이C'에서 '하이 F'의 고음까지 불러야 하는 고난도의 기량을 뽐낸다. 여러 번의 실성한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연기하면서 유연한 콜로라투라 기교를 구사해야 하는 엘비라 역은 소프라노 파트리치아 시그나와 프란체스카 란자가 연기한다.

파트리치아 시그나는 라 스칼라극장,베로나 야외극장,로마국립극장 등에서 주빈 메타,다니엘 오렌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공연하며 찬사를 받은 주역.리카르도 역은 바리톤 김동규와 카를로 모리니,조르조 역은 베이스 변승욱,김남수가 열연한다. 리카르도와 조르조 같은 저음 가수들까지도 콜로라투라 기교를 소화한다. 지휘는 스테파노 세게도니,연출은 토스카니니 재단 총 예술감독인 리카르도 카네사가 맡는다.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그동안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정도가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벨칸토 레퍼토리였다"며 "가장 선율미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이 오페라를 드디어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했다.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협연.1만~25만원.(02)543-2351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