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홍시 속살 같은 저 노을처럼…부질없는 마음도 함께 저물다

● 경기 평택(上)

온기 가득한 농업박물관…두트레 방석에 옛생각 물씬
먹빛 화강암으로 만든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철불 같은 묵직한 침묵 이끌어
평택항마린센터 오르면 서해대교가 손에 잡힐 듯

평택시 고덕면 방축리,1352년 나옹화상이 창건한 장안산 서천사를 찾아간다. 정면 3칸 · 측면 2칸의 미륵전에는 1870년 동파 스님이 땅 속에서 발굴했다는 석조여래좌상이 좌정해 있다. 상체만 밖으로 노출된 불상은 큼지막한 얼굴에 목은 짧은 데다 목에 가로로 표현하는 세 줄기 주름인 삼도도 없는 밋밋한 모습이다.

앞뒤로 45번 국도와 고속도로가 지나는 서천사의 모습은 조금 살풍경하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때 마을 앞에 방축을 쌓아 간척지를 만들기 전만 해도 서천사는 제법 운치있는 바닷가 절이었을 것이다. 시절 따라 변하는 것이 어찌 속세뿐이랴.◆오랜 미래가 되어버린 '농업의 추억'

고덕면 두릉리,일제강점기 때 언론인 · 항일 민족운동가 · 민족사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긴 민세 안재홍(1891~1965) 생가로 향한다.

10년 전 서울에서 내려온 민세의 첫째 며느리 김순경 여사(87)가 지키는 생가는 무척 정갈한 모습이다. 'ㄱ'자형 초가인 안채와 'ㅡ'자형 기와집인 사랑채가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음식상을 들이고 내기에 편하도록 부엌과 대청 사이에 반 칸의 연결 통로를 둔 안채의 구조가 눈길을 끈다. 사랑채는 신간회 활동 등으로 9차례나 옥고를 치르면서도 일제 관변학자들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애썼던 민세가 《조선상고사감》 등 한국고대사를 연구 집필하던 공간이다. 안재홍 사상의 핵심인 "모든 사람이 다 제 말을 하고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다사리'주의를 생각하며 오성면 숙성리에 있는 농업기술센터 안농업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 1층에 전시된 삼태기 · 거름지게 등 농기구와 전통생활용품을 들여다본다. 그네를 보니 나락을 훑을 때면 까끄라기가 달라붙어 온 몸이 꺼끌꺼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독을 덮는 데도 쓰고 깔고 앉기도 했던 두트레방석이 실내악단 어울림이 부르는 노래 '두트레 방석'과 함께 추억을 불러온다.

'두트레 방석 뚜껑 밑에는 불뚝배 항아리가/ 배꼽도 없이 봄 여름 가을을 벗고 살았지/ 두트레 방석 뚜껑 속에는 백제 신라 살아온 할머니 냄새/ 그 마음새 고요히 서려 있었지(후략).'연식이 오래된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기계로 짓는 요즘 농업에서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테마 식물원으로 발길을 옮겨 고비,석위 등 자생식물들과 엔젤 트럼펫,새의 부리를 닮은 붉은 꽃이 아름다운 극락조화 등 열대식물들을 들여다본다.

◆만약 그가 임진왜란 때 살아 있었더라면

용성리성 · 자미산성 · 비파산성 등이 한데 모여 있는 안중면 용성3리로 향한다. 옥길양수장 뒤편 자미산 남쪽에 있는 용성리성을 돌아본다. 밭이 된 곳을 빼고는 흙으로 쌓은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이다. 해발 30~40m밖에 되지 않는 야산에 쌓은 이 성은 아마도 행정 치소(治所)가 있던 비파산성의 보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비파산성은 비파산(해발 102.2m) 줄기를 따라 쌓은 포곡식 토성이다. 예부터 용성리 일대는 한양으로 가는 과객들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지금도 마을 가까이 의정부까지 뻗은 39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왜구로부터 한양으로 가는 길목을 확보하려고 쌓은 성들로 보인다.

희곡2리 대덕산 자락 이대원 묘를 찾아간다. 이대원(1566~1587)은 1587년 남해안을 침범한 왜구를 섬멸하다 전사한 무관이다. 신도비와 동상을 지나 서해대교가 바라다보이는 장군의 묘소로 오른다. 좌우에 전 부인과 후 부인의 묘마저 없었다면 쓸쓸하게 느껴졌을 만큼 비와 상석만이 놓여 있는 조촐한 묘다.

녹도만호였던 이대원은 1587년 남해안에 침입한 왜구의 배 20여척을 대파하고 적장까지 붙잡아 좌수사 심암에게 바쳤다. 심암은 공의 전공을 빼앗으려다 여의치 않자 다시 침입한 적에 맞서 피로한 병사 100여명을 거느리고 출병토록 함으로써 그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본영에 구원 병력을 요청했지만 올 리 없었다. 결국 그는 고흥 손죽도 해상에서 적에게 사로잡혀 죽었다.

남구만이 쓴 신도비문은 '적들이 공을 돛대에 묶어 놓고 때렸으나 죽는 순간까지 꾸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공의 최후를 증언한다. 뒤늦게 죄상이 들통나 심암은 처형되고 이대원이 좌수사를 임명받았지만 이미 죽은 후였다.

도대체 22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장수가 무슨 전술을 써 20여척이나 되는 왜선을 격파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심암의 흉계에 걸려들지 않고 5년 후인 임진왜란 때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이순신과 더불어 왜적 격파의 한 축을 담당했을 터이니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국제항으로 발돋움하는 만호리 평택항,평택항마린센터 전망대에 오른다. 손을 뻗으면 컨테이너가 가득한 부두와 아산 읍내리 당간지주(보물 제537호)를 본뜬 높이 186m의 서해대교 주탑이 잡힐 듯하다.

◆불사에 목숨 바친 검은 소는 보살의 화신

평택에서 가장 유서 깊은 절 심복사로 향한다. 고려시대 광덕현의 치소가 있었던 원덕목마을 덕리성지에서 발길을 멈춘다. 원래 사각형의 토성으로 동 · 서 2개의 성이 있었지만 현재는 서성의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제법 운치있는 솔숲을 이룬 성터를 가리켜주던 슈퍼 아주머니는 "저렇게 낮은 곳에 있는 게 무슨 성이냐"며 이죽거린다. 그러나 성 주위를 도랑처럼 판 해자가 남아 있어 고대 축성법에서 중세 축성법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심복사 들머리에서 소무덤을 들여다본다. 파주 치산포에 사는 어부들이 덕목리 앞바다에서 고기잡이하다 건진 석불을 모실 절을 짓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검은 소 세 마리를 기리는 무덤이다. 두 그루 향나무가 지키는 무덤 앞에는 상석처럼 맷돌이 놓여 있다. 1924년 봉분을 보수하던 과정에서 검은 소털과 소뼈가 드러났다고 한다. 이 전설은 우리나라 전통 소의 색이 검은 색이었다는 것과 소 세 마리가 과로사할 정도로 심복사 불사가 컸다는 것을 암시한다.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65호)은 둥글고 원만한 얼굴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다. 계단식으로 층층이 새긴 단조로운 옷 주름이 어깨를 감싸고 있다. 먹빛 화강암 석불은 철불 같은 느낌을 자아내며 깊고 무거운 침묵의 세계로 법당을 찾은 중생을 이끈다.

안성천 하구에 있는 평택호관광지로 향한다. 운 좋게 권관3리에서 긴 서해대교의 중간으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만난다. '서해대교 위/ 홍시 속살 같은/ 저 노을'(고두현 시 '만리포 사랑' 부분)이라는 시구를 떠올렸다. 시구 그대로 서해대교 위로 떨어지는 해는 허공이라는 커다란 감나무에 열린 홍시였다.

안성천,진위천에서 흘러온 물을 쉴 새 없이 제 항아리에 길어내던 평택호가 저녁 어스름을 방목하고 쉬고 있다. 수변 데크로드를 따라 걷는다. 물갈퀴질을 그친 오리배들이 건들거리며 떠 있고 그 너머로 아산 백석포 마을이 불빛을 글썽거리고 있다. 온종일 내 마음 속을 떠돌던 정처없음 · 덧없음 · 막막함 따위 부질없는 감정들이여,이제 그만 쉬거라.


◆ 느긋하게 즐기는 영양보리밥·생태찌개…오이·쌈 채소 따기 등 평택채소마을서 농촌체험

맛집

'거기,남보다 먼저 나서 바삐 닿아야 할/ 고난의 세월 있으니/ 찬이슬 속에 깜박이는 잔별빛 어깨에 받고/ 밥 한 그릇 간다// 후루룩 들이킨 물통 같은 밥통 되게 흔들며/ 밥 한 그릇 서둘러 차운 길 간다. '(정운천 시 '새벽밥' 전문) 요즘은 저렇게 비장한(?) 새벽밥이 따로 없다. 아침 점심 저녁밥이 모두 서둘러 먹고 일어서야 하는 새벽밥이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밥 먹는 것이야말로 웰빙의 첫걸음인 것을.

신대동 518-10 촌집(031-656-9008)은 낯익은 한옥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집이다.

옹기종기 모인 항아리들과 전통 생활소품들이 눈과 입을 동시에 즐겁게 해준다. 보리밥을 시키면 밑반찬으로는 각종 나물과 열무 동치미,비지찌개,마늘종볶음,상추무침,김치전, 표고버섯볶음이 딸려 나온다.

얼큰한 생태찌개는 속풀이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영양보리밥 6000원,생태찌개(2인) 2만2000원.

여행정보

진위면 하북2리 평택채소마을은 최첨단 시설농법으로 채소를 가꾸는 농촌마을이다. 다른 농촌마을보다 젊고 패기에 찬 영농후계자들을 주축으로 첨단 설비를 갖추고 앞서 가는 농업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평택채소마을을 찾으면 오이따기 체험,방울토마토따기 체험,무농약 쌈 채소따기 등 즐거운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 문의 공재동(011-9825-8848) 경부고속도로→오산IC→ 원동4거리→서탄삼거리 우회전→우측 농협 APC(물류센터) 맞은 편 버스정류장 샛길로 직진→하북2리 마을회관.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는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031)684-5999,여객·화물예약 1577-1889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