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벤처' 캐피털이라고?

"창업자들의 성공은 시장에 대변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창업자들은 실패를 하더라도 현재의 일을 계속함으로써 경쟁력의 취약점이 무엇인지를,또 더 진행시키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알아낼 때까지 버틴다. 경제가 진화하고 재생하려면 창업이 주동 엔진이 돼야 한다. "

세계적인 전략컨설팅 회사인 모니터그룹의 조언이다.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밀을 벤처 활성화에서 찾은 《창업국가》에서 저자는 이런 벤처창업자들을 지원하고 그 모험문화를 북돋는 것이 21세기형 발전의 원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전 세계가 빠져 있는 저성장의 함정은 곳곳에서 실업을 낳고 위기를 키우고 사회불안을 야기시키고 있다. 여기다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일이 필요한 사람만 남아도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일자리를 늘릴 방법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세계가 창업 활성화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일자리가 없으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면 된다'는 것이 그 기본 철학이다.

그러나 국내의 상황을 보면 과연 한국에서도 창업이,벤처정신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최근에는 벤처공모전에 출전하는 대학생들조차 출전 동기를 '취업 스펙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떳떳하게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은퇴하는 사람들이 그동안의 경험을 송두리째 버리고 소일거리만 찾는 현상도 놀랍고도 무서운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필자의 사무실을 찾아오는 발명가나 벤처창업 희망자들을 만나면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 알게 됐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괜찮은 기술을 개발해도 도대체 '돈'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하소연이 대부분이다. 정부에서 타 쓸 수 있는 창업지원금이 있긴 하지만 워낙 소액이어서 회사로서 자리를 잡기에는 보탬이 안 된다는 불평들을 쏟아냈다. 벤처캐피털 회사를 소개해주려고 했더니 더 가관이었다. 도대체 초기 벤처에 투자하는 회사들을 찾을 길이 없었다. 창업의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회사가 안정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승부를 보려는 5,6년차 회사에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선 본선 끝내고 결선에 오른 우수한 선수에게만 투자하겠다니 그런 회사들이 '벤처'라는 말을 붙이고 있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실제로 벤처캐피털은 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창투사 창투조합 등을 포함해 한국의 벤처투자자금이 실제 집행된 것은 560건 1조910억원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창업 초기에 투자하는 엔젤투자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벤처펀드 가운데 엔젤투자자 비중은 1.1%(181억원)에 그쳤다.

물론 벤처캐피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는 제도적 · 문화적 문제가 있다. 투자한 회사가 기업공개(IPO)를 하기 전까지는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 그렇다. 또 펀드의 중심에 기관투자가들이 있어 지나치게 단기 성과위주로 평가하는 것도 이들을 위축되게 하는 요인이다. 이런 문제를 그냥 두고 정부에서 청년 창업을 아무리 강조해봐야 공염불이 될 뿐이다. 기업들이 그 사례를 보여줘야 한다. 사내벤처 공모제를 통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그들이 창업해서 회사 내에 있든 회사 밖으로 나가든 모험을 걸게 해 줘야 한다. 네이버나 다음을 억지로 만들어내보자는 얘기다. 단기 처방이지만 우리는 지금 벤처 성공 사례가 더 많이 필요한 시점에 있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