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인터뷰] 르네상스 연 메디치家 비결은 '생각의 빅뱅'

●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펴낸 김상근 연세대 교수

이질적인 동서사상 '융합'…"자신 낮추고 함께 생활" 정신도

15세기 세계 최고의 부자 가문으로,16세기에 교황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프랑스 왕실에 두 명을 시집보냈고,예술가와 학자를 후원해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유럽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가문을 말하는지 쉬 짐작할 수 있다.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를 터전으로 한 메디치 가문이다. 조반니 디 비치 메디치가 1397년 피렌체에 메디치 은행을 세우면서 시작된 이 가문은 어떻게 그런 역사를 일구었을까.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47)는 메디치 가문 350여년 역사의 키워드로 '통찰력의 리더십'을 꼽는다. 그는 "메디치란 이름은 탁월함의 추구,통찰력,단호함,인적 네트워크,예술에 대한 관심과 후원,인문학과 과학에 대한 경외를 상징한다"며 "가문의 이름이라기보다 인간성의 한 꼭짓점을 찍었던 시대정신"이었다고 역설한다. 새 책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21세기북스,296쪽,1만6000원)을 통해서다. 서울 봉래동에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최근 중국에서 메디치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문을 연 그는 "우리도 메디치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높은 경제성장에도 무언가 허전했던 겁니다. 돈이 쌓인다고 선진국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시대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어디에서 그런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메디치 가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도 국격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죠.잘게 분열된 데다 강대 세력에 둘러싸인 15세기 전후 피렌체와 한반도 상황이 비슷해요. 시대 흐름을 읽고 리드했던 메디치 사람들의 통찰력이 절실한 이유예요. "

김 교수는 동서 사상의 빅뱅을 유도한 코시모 데 메디치의 결단에 주목한다. 코시모는 메디치 가문의 실질적 창업자인 조반니의 아들이다. "메디치 은행을 교황청의 주거래은행으로 만든 코시모는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기존 체제를 재해석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판을 다시 짜는 방법을 고민했죠.1439년 피렌체 공회의를 유치,주류 사상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동방 비잔틴 제국의 플라톤 철학을 충돌시킨 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별적인 존재와 플라톤의 보편적 이상의 결합,동질적인 것이 아닌 이질적인 것의 융합 즉 '메디치 효과'를 통해 르네상스를 견인한 것이죠."

그는 메디치 가문의 세부 경영원칙을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로 요약했다. '유약겸하(柔弱謙下),여민동락(與民同樂)'에 그 정신이 함축돼 있다. 약하고 부드러우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항상 대중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즐긴다는 것이다.

"메디치 사람들은 의리와 신용으로 한번 맺은 관계를 배신하지 않았죠.항상 온화하게 몸을 낮추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대중이 원하는 일이라면 손해도 볼 줄 알았고요. '현자의 리더십'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할까요. 자연히 인재들이 몰려들밖에요.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마키아벨리적인 교활하고 민첩한 지성,임기응변의 능력,용기와 위엄은 동서고금의 리더들에게도 요구되는 필수 덕목이다. 필요하다 싶을 때 자신의 전부를 베팅할 수 있는 배짱도 마찬가지다.

이런 리더십의 메디치 가문에 큰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나갈 때였다.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초 데 메디치가 '캐시 카우'를 손에 넣으면서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의 '모럴 해저드'를 간과해 은행의 몰락을 초래한 것이다.

"확실한 캐시 카우가 있어도 모럴 해저드는 조심해야 합니다. 누구든 서 있는 자라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이치와 같죠.그리 보면 메디치가는 실패에서도 가르침을 주는군요. 무엇보다 피렌체 외곽 카레지에 플라톤 아카데미를 짓고 맘껏 연구하게 했던 코시모의 인문경영이 눈에 띄네요. 진정한 지도자에게는 부와 권력이 최종 목표일 수 없지 않나요. 큰 틀에서 사람을 움직이고 나아가 세상과 역사를 움직여야죠."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