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FT의 황당한 선진국 조건

"한국 금융회사들은 신흥시장과 선진시장의 중간지대에 숨어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4일자에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셔널(MSCI)의 선진지수 편입에 한국 금융회사들이 소극적이라며 이렇게 비꼬았다. 충분히 선진시장으로 승격할 수 있는데도 변동성 유발을 꺼린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이 일부러 신흥시장의 언저리에 머무르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FT는 MSCI 선진지수 편입을 '영예(honour)'보다는 '성가신 일(annoyance)'로 여기는 분위기가 한국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근본적인 개혁,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보호를 끝내는 개혁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MSCI선진지수 편입과 상관없이 한국은 안타깝게도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란 경고를 곁들이기까지 했다.

이 보도를 접한 증권업계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오는 22일 한국 증시의 MSCI 선진지수 편입 여부를 발표한다. 이를 앞두고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양측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한국의 미온적 태도탓이 아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MSCI 측은 선진지수 편입의 전제조건으로 외환거래 자유화 및 코스피 지수 사용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선진지수 편입이 '영예로운 일'이라고 해도,일개 지수산정 회사의 요구에 외환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는 없다는 게 증권업계의 반응이다. 더욱이 MSCI 측이 집착하는 코스피지수 사용권은 증시 유동성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돼 쉽게 양보할 일도 아니다. MSCI 선진지수에는 그리스 포르투갈 등 부실국가들이 줄줄이 포함돼 있다. 이들을 탈락시키지 않은 채 한국에 대해 선진시장에 편입하려면 외환거래를 자유화하고 코스피 지수 사용권을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 증시의 글로벌 위상은 이미 높아졌다. S&P,다우존스,FTSE 등 세계 3대지수가 한국을 선진시장에 이미 편입했다. FT가 뭐라고 하든 MSCI 측에 질질 끌려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손성태 증권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