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ㆍ거래내역이 다른 사람 HTS화면에…

● NH증권 '투자자 매매 정보' 통째로 샜다

"가상거래일 뿐" 발뺌하다 "실제거래 상황" 인정
농협 이어 또 전산사고…실명제법 위반 논란 일듯
16일 오후 2시.NH투자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거래하던 박모씨는 평소에 보지 못하던 창이 떠서 깜짝 놀랐다. '체결알림판'이라고 뜬 창에는 '상세체결내역'이라는 제목 밑에 NH투자증권 HTS를 통해 거래하는 투자자들의 거래 내역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매수체결과 매도체결 내역은 물론 매수정정 내역도 떴다. 투자자 중에는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법인투자자의 이름도 있었다.

NH투자증권은 '전산오류'라고 해명하지만 고객들의 거래내역이 HTS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 유포된 초유의 사건이라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전산오류에 따른 것인지,외부 해킹에 의한 것인지 등을 검사할 방침이다. ◆단순한 직원 실수라지만…

NH투자증권은 '직원의 단순한 실수'에 따라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직원이 입력값을 잘못 집어넣어 장중 거래내역이 일시적으로 유출됐다"고 말했다. 시스템 자체의 오류나 보안 문제에 따른 외부 해킹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증권업계 전산담당자들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A증권사 HTS총괄팀장은 "장 시작부터 문제가 됐다가 오류를 수정했다면 모르겠지만 장 중간에 갑자기 거래내역이 유출됐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특정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설명을 내놓은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 오류나 외부 해킹으로 문제가 발생했다면 증권사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만큼 가장 타격이 작은 해명을 내놨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NH투자증권은 이번 사고가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까지 코스콤(한국증권전산)의 전산망을 임차해 HTS를 이용하던 NH투자증권은 지주사 전환 뒤 고객 정보 공유를 위해 자체 전산망으로 바꿨다. NH투자증권은 다만 "농협중앙회 전산망과는 분리돼 있는 만큼 농협중앙회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오락가락하는 NH투자증권의 해명

사고 원인에 대한 NH투자증권의 해명은 오락가락했다. 사고가 발생한 직후 NH투자증권은 "고객들이 봐서는 안 되는 내용이 유출된 것은 맞지만 실제 거래내역은 아니고 가상 거래내역"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시스템 신설 후 시스템 오류 내역을 걸러내기 위해 따로 만든 테스트용 거래내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출된 거래내역과 HTS에 실제 체결된 내역의 체결시간과 매매수량이 일치하는 점을 지적하자 2시간 이후 "실제 거래내역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후 "증권 계좌 없이 HTS를 이용해 시세만 조회하는 투자자들에게만 관련 정보가 유출됐다"며 "시세 조회 ID를 갖고 있는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을 바꿔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책임소재 놓고 벌써 논란이번 사고는 거래내역이 실시간으로 유출됐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고객의 거래내역은 해당 고객을 관리하는 영업담당 직원만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같은 증권사 내에서도 다른 직원들은 함부로 조회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데 일반 투자자에게 유출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실명제법 등 실정법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