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류' 열풍과 개발원조

최근 프랑스발(發) 낭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에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도서가 오랜 노력 끝에 145년 만에 국내로 반환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의 문화수도라는 파리에서 열린 우리 가수들의 'K팝'공연 열풍이다. 문화적 자부심이 강하고 일부 인사들이 한국을 개고기를 먹는 야만의 나라라고 비난했던 프랑스 한복판에서 거둔 성공이라 감회가 더 새롭다.

두 가지 쾌거는 모두 우리의 높아진 국력과 달라진 국격이 이뤄낸 성과다. 한국은 지난해 수출 5000억달러,무역 1조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한류문화의 유럽진출만큼 자랑스러운 것은 공적개발원조(ODA) 분야에서 우리의 역할 변화다. 전쟁 후 원조 받던 나라에서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으로 원조하는 나라가 됐다. 불과 반세기 만에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전무후무한 사례다. 우리 정부는 이에 걸맞게 ODA 규모를 2015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30억달러로 확대하고,'한국형 개발원조 모형'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미 우리의 경제발전 모델은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경제개발계획,새마을운동,고속도로 등 인프라 구축,중화학공업 및 정보기술(IT)산업을 성장시킨 경험과 노하우 등이 그 대상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그냥 단순한 원조방식에서 벗어나 원조 대상국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우리가 가장 잘하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ODA와 연계한 '새마을운동 전수사업'이 그 대표적 예인데 농업중심 개도국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역사는 짧지만 경제발전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왔던 우리의 선진 국가통계시스템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OECD 통계위원회 의장단으로 선임돼 통계청이 아시아 · 아프리카 국가의 통계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통계는 일종의 국제언어다. 어떤 현상이 통계 숫자로 표현되면 사람들은 그 숫자에 경도돼 행동하게 된다. 조금 과장하면 한 나라의 통계시스템을 구축해주는 것은 그 나라의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것과 같다. 통계청은 이미 몽골의 통계정보시스템 컨설팅 및 직원연수를 실시하고 있고 올해는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 등으로 통계지원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지난해 47.9%라는 인터넷 조사 참여율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인구주택총조사의 성공기법을 배우겠다는 개도국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한류열풍이 혐한류로 변질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처럼 개발원조에서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발전한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되 '원조는 두 손으로 겸손하게'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개발원조 선진국이 적용했던 '국익 최우선 원칙'과 달리 글로벌 외교 부문에서도 우리 방식으로 '한류' 열풍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인실 < 통계청장 insill723@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