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법인세 포퓰리즘

한나라당이 지난달 '소득세율 인하'를 철회한 데 이어 지난주에는 '법인세율 인하'마저 포기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등 예산지출 쪽에 쏟아졌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세금 쪽으로까지 번졌다.

한나라당이 법에 명시된 법인세율 인하를 스스로 무산시킨 것은 '합리적인 이성'을 상실했다는 징표다. 법인세 인하는 '부자 감세'와 별 관련이 없다. 법인세가 낮아지면 기업의 대주주는 더 많은 배당을 받을 수 있지만,그만큼 세액공제가 줄고 종합소득세(세율 35%)를 납부하는 단계에서 세금을 더 내야 해 실제 소득은 늘지 않는다. 반면 소액주주는 상대적으로 낮은 14%의 배당소득세율이 분리 과세돼 법인세 인하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1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면 소액주주는 배당소득세를 아예 내지 않는다. 진보정당을 자처했던 민주당도 '집권 여당'이 되자 법인세를 인하(2005년 27→25%)했다. 법인세 인하로 생긴 이득은 단기적으로 주주 몫이지만,장기적으로는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소비자 판매가격 하락 등으로 배분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한나라당은 '법인세 인하=대기업 이득'이라는 반(反)기업 정서에 기대어 법인세 인하를 스스로 철회했다. 내년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얻겠다는 심산에서다.

지난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법인세 인하 문제는 날선 주장만 있었을 뿐 토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포퓰리즘은 이미 중증 단계로 접어들었다. 설령 표를 잃더라도 국정의 기본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책임있는 집권 여당'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세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

국내 기업들을 '기름을 계속 쏟아내는 유전'쯤으로 보는 잘못된 기업관도 문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LG전자 등은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래서인지 이들 기업이 앞으로도 계속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것이라고 한나라당은 믿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많은 돈이 들어가는 무상 정책들을 이처럼 한꺼번에 쏟아냈겠느냐는 얘기가 실제로 나돌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지만,살얼음판을 걷는 경쟁 속으로 끊임없이 내몰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반도체와 PC TV 휴대폰 시장이 순식간에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주가가 지난주 떨어진 이유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을 높이면 매년 5조원 이상 세금이 늘어난다'며 주판알만 튀기고 있다. 기업 실적이 나빠져 세수 기반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엿보이지 않는다. 법인세율 인하를 일방적으로 철회해 생기는 국제 사회에 대한 신뢰 손상도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한다.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여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집권 여당에서 나타난 이런 징후들은 몰락 직전의 강대국에서 보여진 현상들과 비슷하다. 멀리 고대 로마는 말할 것도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진다'는 복지국가 환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까지 신청해야 했던 영국,'위대한 사회'를 건설한다며 1970년대 복지예산을 급격히 늘리다가 일본에 경제 패권을 내줬던 미국이 그랬다. '단군 이후 최대 성과'를 내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지금이 두려운 이유다.

현승윤 경제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