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예지몽(豫知夢)을 꾸는 남자

대학로는 젊음의 거리이며 문화의 거리이다. 길을 가다보면 종종 사주카페나 길거리 운세풀이에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젊었어도 자신의 미래가 궁금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래의 운세는 보통 역학전문가를 통해 알지만, 어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지만, 이는 하늘이 그들에게 준 특별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사에는 양과 음이 있듯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반면 남모르는 고통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현직 고급 공무원 K씨는 꿈으로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게 된 사람이다. 그는 보기 드물게 영적으로 맑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저런 사람이 어떻게 공직에 있는지 신기했다. 마치 큰 사찰의 대웅전에서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큰스님 같다고나 할까. 영(靈)이 맑은 탓인지 그에겐 큰 고민이 있었다. 자기가 꾼 꿈이 너무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처럼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는 예지몽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그는 한동안 꿈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기분 좋은 미래라면 얼마든지 꿔도 괜찮지만 간혹 불행한 일이나 끔찍한 사건을 예견하는 꿈을 꾸면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최근 그는 계속되는 악몽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동안 그가 꾼 꿈은 놀랄 만큼 정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겪은 자신의 경험담을 재미삼아 꺼냈다. 그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때에 예지몽을 꿨다고 한다. 고시 공부를 하다 잠시 책상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서 자신이 판검사가 아닌 다른 공직의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당연히 판검사가 될 줄 알았던 그는 자신의 꿈이 맞지 않길 간절히 소원했다.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연수원에 들어갔지만 똑같은 꿈이 반복됐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걱정이 커졌다. 동기들은 모두 판검사나 변호사가 될 생각에 들떠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미래를 잘 알고 있었다. 동기들이 그에게 어디로 발령받았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나는 아무래도 판검사나 변호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갈 것 같다"고 대답했고 동기들은 어떻게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다른 공직으로 가냐며 농담처럼 들었다.하지만 그는 현재 꿈에서 본 대로 법과 거리가 있는 공직에 몸담고 있다. 이렇게 단 한 번도 틀린 꿈을 꾼 적이 없는 그는 최근 계속되는 악몽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예지몽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미래를 보았던 것이다. 남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 웃음거리로 여길 것 같은 그런 예지몽이었다. 그는 한동안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나를 찾아왔다.

그는 꿈에서 본 것을 말하려고 하였으나, 나는 그의 말을 막았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꿈인지 짐작이 가고 더불어 그의 고충까지 십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꿈을 직접 듣지 않은 까닭은 구약성경 '요나서'의 예언자 요나의 경우처럼 예언이 반드시 맞는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꿈은 그냥 꿈일 때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지자라도 정확한 예언은 불가능하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리고 그의 꿈이 일치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는 없다. 설사 일치했다고 해도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장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알면 지극하다.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것은 자연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것은 그 지혜로써 아는 것이다.”고 했다. 지극한 마음으로 때로는 영이불언(靈而不言)으로 살아가는 것도 세상을 사는 지혜이다. 그는 시간이 나면 지금도 가끔 차를 마시러 온다. 서로 안부를 묻고 세상사는 이야기만 나눌 뿐 더 이상 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도 이제 마음으로 간직하는 지혜로움을 아는 듯하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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