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내달 개방] "토종 로펌이 최대의 적"…짝짓기ㆍ인재 영입ㆍ실력 강화로 '승부'

로펌 대표 7인7색 개방 대책
한국 로펌들이 겁내는 상대는 외국 로펌이 아니라 토종 로펌이었다. 본지가 최근 김앤장,광장을 비롯해 국내 7대 로펌 대표들을 만나본 결과 동업과 고용을 금지하는 개방 초기 단계에서 외국 로펌의 영향력은 미풍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자문 부문의 잠식은 불가항력이라는 판단도 있다. 결국 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국내 로펌끼리의 생존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대책도 자연 로펌의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맞춰졌다. 다른 로펌과의 합병이나 핵심인력 스카우트 등을 적극 추진해 덩치를 키우고,판을 다시 짜보자는 움직임들이 급속히 진행 중이다.

◆합병파…덩치가 중요하다법무법인 화우와 바른은 다른 로펌과의 '짝짓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화우는 국내 로펌과의,바른은 해외 로펌과의 합병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차이점이다.

화우의 변동걸 대표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숫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국 대형 로펌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포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른 로펌과의 합병이 지름길이라는 판단이다.

국내 변호사만 420명인 국내 서열 1위 김앤장 정도의 크기가 목표다. "업계 1위가 갖는 프리미엄이 크다"는 것이 변 대표의 생각.화우 소속 국내 변호사는 200여명으로 엇비슷한 규모의 로펌과 합병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은 10~20명 규모의 부티크 로펌을 찾고 있다. 세종과의 합병 시도가 사실상 무산된 데다 이미 바른도 외형이 커진 상태여서 대형 로펌보다는 바른의 약점을 보완해줄 중소형 전문 로펌이 필요해서다. 외국 로펌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를 위해 홍콩 등에 진출한 영미계 로펌과 접촉하면서 합병 여부를 타진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훈 대표는 "흡수 합병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FTA가 발효되면 무역교류 확대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며 "외국 기업과의 국내 쟁송도 훨씬 많아질 것이고 특히 국제중재 특허쟁송 부동산투자 쟁송 등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핵심 인재 스카우트도 승부수

광장은 최근 몇 개월 새 상당수의 외부 인력을 수혈했다. 지난달에는 S로펌에서 일본통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를 스카우트했다. 공정거래 여부를 둘러싼 정부의 규제가 거세지면서 4월에는 같은 로펌에서 공정거래 전문가 5명도 영입했다. C로펌에서는 헬스케어 전문가를 데려와 의료사고팀과는 별도로 5명 규모의 헬스케어팀까지 만들었다. J로펌에서 노동팀 10여명을 통째로 빼내오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윤용석 광장 대표는 "오래 전부터 법률시장 개방을 전제로 대형화와 전문화를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 로펌이 국내 변호사들을 고용할 경우 더 이상 외국 로펌이 아니라 사실상 국내 로펌이라는 지적이다. 자문영역뿐 아니라 전 영역이 전쟁터로 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력으로 말하겠다

'새벽 1시를 넘어도 클라이언트의 전화를 받자,돈 된다고 마구잡이로 수임하지 말자.'1980년대 후발주자로 로펌업계에 발을 내디딘 태평양의 차별화 전략이었다. 3대 로펌으로 우뚝 성장한 지금,태평양의 법률시장 개방 대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정훈 태평양 대표는 "스카우트 전쟁 등 상당한 지각변동도 일어날 것"이라면서도 고객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로펌이 되도록 윤리경영,가치경영 방침을 계속 밀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앤장과 세종은 자문과 송무의 비율이 각각 6 대 4 정도로 자문 쪽이 강세다. 자문은 외국 로펌의 주 타깃이 될 공산이 높기 때문에 이들 로펌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김앤장은 올초 12명의 판사를 대거 영입하는 등 송무 부문을 강화함으로써 자문 쪽 피해를 만회한다는 전략이다. 이재후 김앤장 대표는 "외국 로펌이 초기엔 국제중재나 인수 · 합병(M&A) 부문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은 피해가 예상되는 자문 부문의 경쟁력을 더 높일 생각이다. 김두식 세종 대표는 "외국 로펌과 경쟁하지만 우리의 실력을 알아주는 곳과는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다"며 합종연횡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우창록 율촌 대표는 "덩치가 중요한가"라며 내실 다지기를 중시하는 실속파다. 특히 조세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실력있는 국내 로펌과의 짝짓기를 희망하는 외국 로펌의 1차 러브콜 대상이 될 수 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