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관료공화국이 낳은 공직비리

규제·감독권 매개로 도처에 만연…정치·기업 연계구조 깨야 근절돼
어느 사회나 규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이를 수행하기 위한 관료들의 감시 · 감독 기능과 인력의 비대화가 뒤따른다. 관료사회의 계층적 구조로 인해,이들이 담당했던 감시 · 감독 기능을 연결고리로 한 YB와 OB간 공생적 유착과 로비스트 또는 브로커적 성격의 활동이 확대된다. 이런 활동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지만,얽히고설킨 인맥을 활용하는 비공식적 행태로 말미암아,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근원을 확인키 힘든 복잡한 사회적 생태계를 구축하게 마련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저축은행 사건,4대강 사업관련 민관 유착,방산업체들의 공급비리 사슬,공공부문 인사청탁을 유발하는 인사관리의 난맥상과 부조리,전관예우로 일컬어지는 관료 · 판검사 및 경찰 출신들의 부정부패가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선진국 문턱을 넘고 있는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도처에 관행화돼 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관료공화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투명지표가 39~40위 범주에 머물러 있는데,이를 뛰어넘을 방안을 시급히 찾아야 할 때다. 규제나 감독권으로부터 생겨난 로비스트,브로커들이 감시나 책임 · 준법 서비스의 원활한 유통에 기여하는 면보다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사회 건강을 해치는 암세포로 진단되고 있음은 늦었지만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의 발표에서 일본은 17위로 등급이 매겨졌다. 일본에서는 정부의 엘리트 고위관리가 발간한 책을 통해,일본 경제의 쇠락을 진단하면서 과거 일본경제의 촉매역할을 했던 정치인,고위관료,민간업체 간 소위 '철의 삼각관계(Iron triangle)'에 대한 근본적인 해부를 시도했다. 이를 통해 일본 사회가 처한 문제들의 뿌리를 파헤치고 근원을 타파할 대책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부패 · 비리 스캔들이 피상적인 증후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철의 삼각관계'가 사회 전반에 걸쳐 농업,교육,산업,보건,국토개발,금융,방산,조달 등 관료들이 만들어 내는 정책,규제,감독 등과 관련된 부패,비리,부조리,도덕적 해이 문제에 깊숙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쉽게 실타래가 풀리지도 않을 뿐더러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적인 개혁이 가해지지 않는 한,일시적인 공직기강 확립이라는 응급처방만으론 근본적인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탄식 어린 고언들이 나왔다. 즉 일본은 공직사회만의 문제라기보다,'철의 삼각관계'로 일컬어지는 권력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국제 사회에 그들의 버블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구하면서 자신들의 치부를 과감히 공유하고 근본적 개혁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체계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 결과 국제투명기구의 등급에서 한국을 훨씬 앞서게 됐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드러나고 있는 우리 관료사회의 부패,부조리 스캔들은 실상이라기보다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명감과 청렴으로 무장된 청지기 같은 관료들이 일부 오염된 관료들에 의해 매도되는 것은 공공부문의 건강을 위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또 관료의 책임의식과 자율로 역량을 발휘할 기회보다는 민원과 감사기관 및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에 업무량의 상당부분이 할애되는 구조적 한계도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비록 규모가 작은 섬나라이긴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관료나 정치지도자들의 근본적인 부패척결과 일벌백계 의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수사적 선언이나 솜방망이 처벌로 반복돼 온 우리의 관행을 타파할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공직비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영철 < 경희대 경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