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경영상] (전문경영인 부문) 이석채 KT 회장, 현실 안주하던 '통신 공룡' 체질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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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ㆍ혁신의 바람
KTF와 합병ㆍ조직 군살빼기 성공…취임 2년 만에 순익 두 배 이상 늘려
스마트ㆍ클라우드 시대 선도
이석채 회장이 KT 대표이사로 취임한 2009년 1월은 KT 역사상 '최대 위기'라고 불릴 만한 시기였다. 그가 취임하기 직전 KT는 남중수 사장 체제였다. 자회사 KTF는 조영주 사장이 맡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11월 남 사장이 차명계좌로 납품업체의 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구속되고 이보다 앞서 조 사장도 납품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회사의 1,2인자가 모두 영어(囹圄)의 몸이 되면서 리더십은 추락했고 기업 이미지도 곤두박질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최대 수익원인 유선전화 매출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기순이익도 37.3%나 감소했다. 숙원사업이던 KT와 KTF의 합병은 기약이 없는 듯 보였다. 2009년 1월14일 주주총회에서 KT의 새 사령탑을 맡은 이 회장은 취임 엿새 만인 1월20일 이사회를 열어 KTF와의 합병을 전격적으로 결의했다. 그리고 3월18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승인을 얻어 6월1일 합병을 완료했다. 2002년 민영화 이후에도 느려터진 의사결정과 현실에 안주하는 듯한 경영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KT로서는 실로 전광석화 같은 변화요,앞으로 펼쳐질 대혁신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회장은 직원 5992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내 조직의 군살을 빼는 일부터 착수했다. 본사직원의 영업일선 배치와 함께 상무보급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권고사직이 이어졌다. 내부에서 불만들이 터져나오자 이 회장은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으면서 병사들이 피곤하다 했다고 쉬었다 갔느냐"고 되받았다.
'과감한 결단'과 '빠른 실행'은 이후 이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와의 데이터센터 설립 협력 사업에서도 이런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일본의 전력 공급부족 문제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전화를 걸어오자 이 회장은 통화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일본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도쿄로 날아가 손 회장을 만나 양사의 협력을 성사시켰다. 삼성전자와의 갈등을 무릅쓰고 KT가 국내에 아이폰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회장이 아니었으면 성사되기 힘들었다는 평이다. 아이폰 도입은 대성공을 거뒀고 KT는 변화와 도전을 추구하는 선도적 사업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변화와 혁신의 이미지는 이 회장의 예전 경력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는 한마디로 정통 경제 관료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경복고를 졸업하고 1964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1969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82년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관료 시절에도 이 회장은 남다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는 게 관가의 대체적인 평이다. 1995년 12월 정보통신부 장관에 취임한 뒤 내놓았던 몇 가지 마스터 플랜이 대표적이다. 초고속정보통신사업 육성방안은 'IT강국 코리아'의 맹아가 됐다. 또 청와대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는 이동통신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의 관료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정보통신부는 1996년 PCS라고 불리는 신규통신 사업자를 추첨이 아닌 서류심사를 통해 선정했다. 그는 이와 관련,장관에서 물러난 뒤인 2001년 4월 PCS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청문심사 배점방식을 특정회사에 유리하게 변경하도록 지시하는 등 관련 업체들이 공정한 심사를 받을 권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2006년 2월9일 대법원은 "특정업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게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회장에 대한 무죄 선고를 확정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이후 KT는 양적 · 질적 성장을 이뤄냈다. 2008년 5271억원이었던 순이익은 2009년 6051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조1719억원으로 급증했다. 매출액도 2008년 18조9328억원에서 지난해 20조2335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회장은 "클라우드컴퓨팅과 스마트그리드 등의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