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경영상]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그룹 일궈낸 '빵의 달인'

● 창업경영인 부문 - 허영인 SPC그룹 회장

식품연구소 만들어 품질경영 도입
파리바게뜨 등 가맹점 5000여개
年 매출 2조8천억…10년만에 6배로
제빵왕,프랜차이즈 경영의 귀재,한국 제빵산업의 대부….허영인 SPC그룹 회장(62)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1983년 삼립식품에서 분사한 샤니 지휘봉을 잡은 뒤 파리바게뜨(베이커리) 배스킨라빈스(아이스크림) 던킨도너츠(도넛) 등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국내 톱 자리에 올려놓으며 '미다스의 손'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SPC그룹 매출도 2000년 4800억원 선에서 지난해 2조8000억여원으로 10년 새 6배 가까이 늘었다. 파리바게뜨 매장 2900여개를 포함해 운영 중인 프랜차이즈 점포 수가 5000여개를 넘어서는 등 명실공히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그룹으로 우뚝 섰다. 올해 매출 목표는 3조3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허 회장의 제빵 사업은 1983년 삼립식품의 성남 공장에 불과했던 샤니를 물려받아 독립 경영에 나서면서 꽃피우기 시작했다. 샤니 사장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국내 제빵업계 최초의 식품기술연구소 설립이었다. 빵도 품질에 의해 승부가 갈릴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간 매출 1조원을 넘긴 토종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바게뜨'가 탄생한 것도 이 즈음이다. 고려당 태극당 등 '당'자 일색이던 당시 베이커리 브랜드를 프랑스풍으로 지어 1986년 파리크라상이란 법인을 설립하고 2년 뒤 파리바게뜨란 브랜드로 가맹사업에 뛰어들었다. 매장에서 직접 빵을 굽는 '베이크 오프' 방식을 도입하고 당시엔 생소한 생크림 케이크를 선보였다. 차별화 전략은 적중했다. 가맹점 출범 10년째인 1997년 고려당 크라운베이커리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뒤 격차를 벌려 나갔다.

허 회장은 미국에서 브랜드를 들여온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 성공으로 '프랜차이즈 경영의 달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들 사업의 성공 포인트도 허 회장이 강조하는 '창의적 도전'에 근거한 차별화였다. 샤니 경영을 안정궤도에 올려놓은 뒤 허 회장이 관심을 둔 분야는 미국 연수시절 접했던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이었다. 배스킨라빈스와 손잡고 1985년 합작법인 비알코리아를 설립했다. '골라먹는 재미'를 제공하는 다양한 제품과 당시 생소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내놓으며 가맹점 수가 1997년 400개에 이어 지난달 말엔 930여개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당시 배스킨라빈스 운영업체인 얼라이드 도맥은 허 회장에게 'SOS' 신호를 보낸다. 얼라이드 도맥이 함께 운영하던 던킨도너츠의 국내 운영권을 허 회장이 맡아달라는 제의였다. 던킨도너츠는 1984년 한국에 진출했으나 시장 안착에 실패,1991년 철수한 터였다. 비알코리아는 1993년 던킨도너츠와 기술제휴 계약을 맺고 2년 뒤 가맹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도넛은 8시간,커피는 18분이 지나면 팔지 않는다'는 약속을 실천하고 셀프 판매라는 국내 현지화 전략을 통해 국내 최대 도넛 브랜드로 성장했다. 2002년엔 외환위기 여파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그룹 모태기업인 삼립식품까지 인수했다.

허 회장의 지론은 '가맹점이 웃어야 본사가 웃는다'는 것.SPC그룹은 이를 위해 가맹점주의 경영 마인드를 키우기 위한 '가맹점주 경영전문대학원(MBA)과정'을 가동 중이다. 파리바게뜨 가맹점 대표단 40여명과 SPC그룹 본사 임원진이 만나 사업비전을 공유하는 상생협력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다.

허 회장은 이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2004년 중국에 진출, 50여개 매장을 두고 있는 파리바게뜨는 현지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최근 중국에서 가맹 3호점을 오픈한 파리바게뜨는 현지 매장 수를 올 연말 100개(직영점 포함)로 늘릴 계획이다. 빵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등에서도 매장을 늘려가고 있으며,올 하반기엔 베트남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도 공략할 방침이다. 허 회장은 이를 통해 "2015년까지 그룹 매출 6조원을 달성하고 2020년엔 글로벌 제과 · 제빵 시장 선두기업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허영인 회장은…

직업도 취미도 빵 굽는 일…빵 냄새만 맡아도 발효 상태 척척 알아내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빵의 달인'으로 통한다. SPC그룹 안에선 '직업도 취미도 모두 빵 굽는 일'이란 말이 나돌 정도다. 그의 열정은 현장경영으로 이어졌다. 허 회장은 1983년 샤니 경영을 맡은 이후 서울 역삼동에 본사 사무실을 만든 2009년까지 26년간 성남공장에서 생산직원 및 연구원들과 함께 현장을 지켰다.

현장경영과 관련해 허 회장의 대학생 시절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고(故) 허창성 삼립식품 회장(창업자)의 둘째 아들인 허 회장은 대학 1학년이던 1968년 어느 날,아버지에게 중고 승용차 한 대를 사달라고 청했다. 근검 · 절약을 강조해온 선친의 허락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허 회장은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선친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한 달 뒤 선대 회장은 아들이 건넨 자료뭉치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 회장이 한 달 내내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제빵시장 트렌드,대리점 현황,소비자 여론조사 등 현장 정보를 모았던 것이다. 허 회장은 지금도 전국 사업장과 매장을 수시로 방문,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허 회장은 경영자가 갖춰야 할 핵심 덕목으로 '엔지니어 마인드'를 꼽는다. 기술을 알지 못하면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1981년 8월 삼립식품 대표에 오른 지 7개월 만에 대표직을 사임하고 '미국 제빵학교(AIB)'로 연수를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빵 냄새와 질감만으로 빵의 발효 상태,물과 소금의 적정 배합 여부를 알 수 있을 정도의 전문가로 변신했다. 지금도 회사 신제품 빵은 반드시 허 회장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그는 매주 열리는 신제품 시식회에 참석,맛이나 형태에 문제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출하를 중단시킨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