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O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 (1) '3층 연금'으로 준비된 노후…"은퇴 전 소득 최소 70% 매달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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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00세 시대' 인생설계 - (1) '은퇴 강국' 스위스스위스 취리히 시내 금융가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레브리스.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이 동네의 한 쪽에 레브리스양로원이 자리잡고 있다. 4층짜리 흰색 건물 2개동으로 이뤄진 이 양로원은 알프스 산맥의 수려한 경관과 어울려 리조트 분위기를 낸다.
('3층 연금' : 공적연금 + 기업연금 + 개인연금 )
기업ㆍ공적연금 의무 가입
개인연금 가입률도 85%…年 855만원까지 소득공제
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을 방문했을 때 92세의 빌리 마그 씨는 자신의 방에서 키보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마그 씨는 "매일 한 시간씩 키보드 연주 연습을 하고 있으며 종종 다른 노인들에게 공연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년째 이 양로원에서 살고 있다는 마그 씨는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양로원은 마그 씨를 포함한 90명의 입주자들에게 식사와 청소 세탁 난방 등 기본적인 생활을 책임진다. 입주자들은 강당과 미용실 체육관 정원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문화생활과 레크리에이션,치매 방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매달 5000스위스프랑 연금 받는다"
레브리스양로원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대신 적지 않은 돈을 받는다. 마그 씨는 하루에 130스위스프랑(1스위스프랑은 1280원)을 낸다. 한 달에 4000스위스프랑이다. 우리 돈으로 500만원 정도다. 의료비와 문화생활비 등은 별도로 들어간다. 등에 상처가 나서 직원이 약을 발라주면 양로원에 2.5스위스프랑을 내야 하고,안약을 넣을 때는 1스위스프랑을 내야 한다. 취리히 시내 다른 26개 양로원도 비슷하게 운영 중이다. 스위스의 양로원 입주자들은 이처럼 많은 돈을 어떻게 충당하고 있을까. 마그 씨는 연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공적연금과 기업연금에 가입해 꾸준히 돈을 내 요즘 한 달에 5000스위스프랑가량을 받는다"며 "경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스위스의 공적연금과 기업연금은 한국의 국민연금 및 퇴직연금과 비슷하다.
◆"65세 넘어도 생활고 겪지 않아"
옆방에 살고 있는 80대 에글리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부인 에글리 씨는 "젊었을 때 직장을 여러 번 옮겼지만 기업연금을 개인 계좌로 갖고 있어 50세가 넘어서도 불입하는 게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5만6000달러를 넘어 세계 최고 부자나라에 속하는 스위스는 은퇴 강국이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00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720만명 중 110만명(15.4%)에 이른다. 1980년대에 이미 고령사회(인구 7% 이상이 65세 이상)에 진입했으며 2020년이면 초고령사회(인구 20% 이상이 65세 이상)가 될 전망이다.
프랑스 보험회사인 스코르에서 스위스를 총괄하고 있는 뮤식 안드레아스 마케팅담당 이사는 "스위스에서 65세가 넘는 고령자 가운데 생활고를 겪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연금 제도가 발달했고 스위스 국민들이 연금을 적극 활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스위스에서는 이른바 '연금의 3층 보장 구조'가 1980년대부터 정착했다. '3층 연금'이란 공적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을 말한다. 20세가 넘어 직장을 잡으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공적연금은 1949년 도입했으며 1985년엔 기업연금 가입을 의무화했다. 개인연금은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1980년대 이후 보편화했다. ◆기업 · 개인연금 비중 커져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연금 납입액 300억스위스프랑 가운데 200억스위스프랑이 기업연금이다. 취리히금융그룹에서 기업연금을 맡고 있는 산드로 마이어 이사는 "직장인의 경우 노후 대비의 핵심은 기업연금"이라며 "전체적으로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스위스 정부는 1960년대부터 정부연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개인연금에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지금은 연간 6682스위스프랑(855만원)까지 연금 납입액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준다. 이 때문에 전 국민의 85%가량이 개인연금에 가입해 있다. 레브리스양로원에서 여생을 즐기고 있는 마그 씨는 매달 공적연금에서 2000스위스프랑,기업연금에서 3000스위스프랑을 받고 있다. 마그 씨는 "두 연금에서 받는 돈은 은퇴 전 월급의 70%가량"이라며 "양로원 내 다른 입주자들도 연금 수령액이 대체로 4000~6000스위스프랑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정부에서 연금 가입을 의무화하고 또 65세 이전에는 인출할 수 없도록 한 것이 노후를 대비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취리히(스위스)=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