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곁에두고 싶은 책] 잡스도 알고보면 '아이디어 도둑'…빌리는 것도 '혁신'의 한 방법

바로잉 |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지음 |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420쪽 | 1만8000원
좋은 화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임모(臨摸)와 사생(寫生)이다. 글쓰기의 기본도 다르지 않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많이 읽고(배우고),메모하고,잘 썼다 싶은 글은 베껴 봐야 한다. 이왕이면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써 보는 게 좋다. 원초적 호기심과 세심한 관찰 · 질문 · 분석 · 종합적 추론은 그 다음 덕목이다.

'바로잉(Borrowing · 빌려오기)'의 저자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모방은 창조를 위한 실행의 첫 단계"라고 말한다. 모든 위대한 창조물은 모방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이론,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바탕으로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뭔가 창조하고 싶으면 복사부터 해보라고 얘기한다. 빌리기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많다. 파블로 피카소는 일찍이 '뛰어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일갈했고,스티브 잡스는 '혁신과 창의성은 특별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변의 것을 배우고 익히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머레이가 다른 건 빌리는 방법과 그것을 새 아이디어로 만드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는 점이다. 그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를 쓴 대니얼 핑크의 정의를 빌려 정보시대를 넘어선 개념시대로 오늘날을 규정했다. 동시에 정보시대엔 기존 정보 관리만 잘하면 됐지만 개념시대엔 그것들을 가공,새로운 정보를 내놔야 한다고 적었다.

기업과 개인 모두 창의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진단이다. 그러면서 기업과 개인이 어떻게 혁신적이고 창의적일 수 있는지 바로잉, 곧 빌려오기 6단계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다. 책에서 보여주는 '모방을 통한 창조의 6단계'는 다름 아닌 '정의하고,빌리고,결합하고,숙성시키고,판단하고,끌어올리는' 것이다. 첫 단계는 정의하기.문제를 해결하자면 무엇보다 핵심이 뭔지 파악 · 분석하고 확인한 다음 이해해야 한다. 관찰하고 또 관찰하는 것도 필수다. 다음 단계는 빌리기.동업자와 가까운 곳뿐만 아니라 경쟁자와 반대편에서도 빌려야 한다. 경쟁자에게 빌리면 모방이 되지만 다른 분야에서 빌리면 창의적인 행위가 된다.

세 번째는 결합하기.결합은 창의성의 본질이다. 결합이 없으면 창조도 없다. 시나리오 작가 월슨 마이스너의 말은 결합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전한다. '한 사람을 모방하면 표절이 되지만 두 사람을 모방하면 연구가 된다. '네 번째는 숙성시키기.내용이 분명해질 때까지 숙성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일정 기간 생각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다.

숙성 과정을 거쳐 해결책 내지 아이디어가 나오면 장단점을 따져 본다. 이 때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1537년부터 실시하는 방안을 써보는 것도 괜찮다. '악마의 대변인제'란 것으로 시성식(諡聖式) 전 악마의 대변인이 성인 후보자의 성품이나 행적을 비판하게 함으로써 행여 몰랐을지 모를 문제를 뒤져보는 방식이다. 마지막은 끌어올리기다. 최종안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베끼고 훔치는 데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을지도 모를 독자를 위해 저자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모방 더하기 약간의 개선이 쌓이고 쌓인 게 인류 문명의 본질이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