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이건희 회장이 고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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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21일 "(조직 쇄신이)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해봐야 한다"고 했다. "계속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는 말도 했다.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과 인사지원팀장 등 그룹 컨트롤타워의 핵심 보직 두 자리를 동시에 바꾼 지난 15일 일본으로 떠났던 그가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한 얘기다. 쇄신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삼성테크윈 임직원 비리에서 촉발된 조직쇄신 한파가 어디까지 갈지 삼성 임직원들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그 사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감사팀장이 직급을 높여 새로 임명됐고,그룹 경영진단팀과 함께 계열사 감사팀 인력 보강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계열사를 포함한 전체 감사인력을 100명가량 더 충원해 500~6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회장의 쇄신 드라이브가 어디로까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삼성 임직원들뿐만이 아니다. 그가 그룹 전반에 걸쳐 강력한 '쇄신'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데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게 재계 사람들의 생각이다. 삼성이 먼저 치고나갔든,정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든 정치적 의도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한때 그룹을 좌지우지했던 옛 경영 인맥을 솎아내며 승계 기반을 다지는 과정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삼성에선 펄쩍 뛴다. 느슨해진 조직 문화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부정들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 이 회장이 '이대로는 안 된다'며 강도높은 조직 쇄신을 주문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매주 두 번씩 출근하다보니 그룹 속사정을 더 자세히 알게 됐고,위기감이 커진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이 회장의 속내를 속속들이 읽기는 쉽지 않다. 삼성 수뇌부도 전후 사건과 맥락으로 의중을 짐작할 뿐이다. 다만 질책이 하루이틀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외부가 아닌 그룹 내부를 겨냥하고 있고,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데도 모두 동의한다. 지난해 3월 경영에 복귀한 뒤 이 회장이 내놓은 키워드는 '10년 뒤''미래''신사업''위기''긴장감''자만' 등이다. 이 단어들을 따라가보면 그의 눈은 '잘나가는' 지금의 삼성이 아니라 '불확실한' 10년 뒤를 향하고 있다. 그룹 경영의 세대 교체가 이뤄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 회장이 절박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천신만고 끝에 일본 소니를 제치며 글로벌 리더가 되는가 했더니,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시장 판도를 뒤엎어버린 애플로 인해 다시 '팔로어(follower)'가 됐다.
10년 뒤가 걸린 신사업들은 여전히 갈길이 멀기만 하다. 지난해 5월 그는 직접 사장단 회의를 열어 '5대 신수종 사업'을 정하고 집중을 요구했다. 1년 뒤 태양전지는 이 회장의 재검토 지시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삼성SDI로 사업 자체가 이관됐을 만큼 출발부터 경고음이 나왔다. 이 회장의 화 · 목요일 정례 출근에는 이런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도 "긴장감이 좀 높아지지 않겠냐"고 했었다. 그리고 출근 한 달여 만에 서슬퍼런 쇄신의 칼을 빼들었다.
지금 이 회장이 가진 고민의 깊이와 무게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당시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조직을 추슬러 '새로운 삼성'을 시작하지 않으면 10년 뒤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목요일인 23일 이 회장은 출근하지 않았고 삼성의 긴장도는 더 높아진 듯하다. 이 회장의 고민이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수언 산업부 차장 sookim@hankyung.com
삼성테크윈 임직원 비리에서 촉발된 조직쇄신 한파가 어디까지 갈지 삼성 임직원들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그 사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감사팀장이 직급을 높여 새로 임명됐고,그룹 경영진단팀과 함께 계열사 감사팀 인력 보강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계열사를 포함한 전체 감사인력을 100명가량 더 충원해 500~6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회장의 쇄신 드라이브가 어디로까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삼성 임직원들뿐만이 아니다. 그가 그룹 전반에 걸쳐 강력한 '쇄신'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데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게 재계 사람들의 생각이다. 삼성이 먼저 치고나갔든,정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든 정치적 의도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한때 그룹을 좌지우지했던 옛 경영 인맥을 솎아내며 승계 기반을 다지는 과정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삼성에선 펄쩍 뛴다. 느슨해진 조직 문화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부정들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 이 회장이 '이대로는 안 된다'며 강도높은 조직 쇄신을 주문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매주 두 번씩 출근하다보니 그룹 속사정을 더 자세히 알게 됐고,위기감이 커진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이 회장의 속내를 속속들이 읽기는 쉽지 않다. 삼성 수뇌부도 전후 사건과 맥락으로 의중을 짐작할 뿐이다. 다만 질책이 하루이틀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외부가 아닌 그룹 내부를 겨냥하고 있고,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데도 모두 동의한다. 지난해 3월 경영에 복귀한 뒤 이 회장이 내놓은 키워드는 '10년 뒤''미래''신사업''위기''긴장감''자만' 등이다. 이 단어들을 따라가보면 그의 눈은 '잘나가는' 지금의 삼성이 아니라 '불확실한' 10년 뒤를 향하고 있다. 그룹 경영의 세대 교체가 이뤄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 회장이 절박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천신만고 끝에 일본 소니를 제치며 글로벌 리더가 되는가 했더니,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시장 판도를 뒤엎어버린 애플로 인해 다시 '팔로어(follower)'가 됐다.
10년 뒤가 걸린 신사업들은 여전히 갈길이 멀기만 하다. 지난해 5월 그는 직접 사장단 회의를 열어 '5대 신수종 사업'을 정하고 집중을 요구했다. 1년 뒤 태양전지는 이 회장의 재검토 지시를 받고 삼성전자에서 삼성SDI로 사업 자체가 이관됐을 만큼 출발부터 경고음이 나왔다. 이 회장의 화 · 목요일 정례 출근에는 이런 위기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도 "긴장감이 좀 높아지지 않겠냐"고 했었다. 그리고 출근 한 달여 만에 서슬퍼런 쇄신의 칼을 빼들었다.
지금 이 회장이 가진 고민의 깊이와 무게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당시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조직을 추슬러 '새로운 삼성'을 시작하지 않으면 10년 뒤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목요일인 23일 이 회장은 출근하지 않았고 삼성의 긴장도는 더 높아진 듯하다. 이 회장의 고민이 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수언 산업부 차장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