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라운영의 계기판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해 면허증을 받던 날의 설렘과 기쁨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설렘도 잠시뿐이고 처음 차를 몰고 거리에 나간 순간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핸들을 잡은 손에는 땀이 흥건하고,목은 디스크가 걸린 것처럼 좌우로 돌아가지 않아 앞만 주시하고 운전했다. 뒤 차량의 운전자는 경적소리를 울리면서 빨리 가라고 재촉을 해댔다. 어떨 때는 어느새 내 차를 추월해 창문을 열고 거의 "여자가 밥이나 어쩌구~!"라는 눈길을 보내고 보란듯이 속력을 내며 가기도 했다. 어느 초보 운전자처럼 "우리집에서는 남편이 밥을 합니다"라고 쓴 표지판을 뒤에 부착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 기억이 난다.

운전이 익숙해질수록 운전하는 나를 편안하게 해준 것은 자동차 계기판이었다. 청진기 역할을 하는 RPM계기판(회전속도계),오일순환계의 문제를 알려주는 오일 경고등,연료상태,냉각수온도,브레이크 경고등,속도계 등 계기판을 보면 운전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쉽게 눈에 와 닿는다. 최근에는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등 초보 운전자들도 쉽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치가 더 많아졌다. 자동차가 주행거리 등 계기판 정보에 따라 오일을 보충하고,팬 벨트를 점검하고 타이어를 교환해야 하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준비하고 점검해야 할 사항을 알려주는 '인생 계기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계기판은 한눈에 들어오도록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고민,결혼 및 출산 준비,육아 및 교육,노후대비 관련 통계정보가 이 계기판에 담겨야 한다.

더욱이 통계 계기판은 딱딱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자동차 계기판처럼 바로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통계청이 단순한 수명표 대신 건강과 관련 있는 기대여명 통계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 계기판은 행복한 인생을 향한 여정에서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운영하는 데도 통계를 기반으로 한 국정운영 계기판이 필요하다. 국내총생산(GDP) 등 성장 지표는 속도계로,경제활동 지표는 회전 속도계로,물가지수 등 각종 동향 지표는 순환계통을 담당하는 오일 경고 등으로 비유할 수 있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복지문제도 재원이라는 냉각수 온도 계기판을 점검하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국정운영 계기판을 모든 정부부처와 기관이 공유하고 잘 활용한다면 복잡한 국정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동차 계기판이 없다면 안전한 운전은 어려울 것이다. 통계청이 앞장서 이 성능 좋은 계기판을 만들어 국민과 국가가 위험을 예방하고 적절한 속도의 성장과 발전을 이뤄나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인실 통계청장 insill723@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