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사기에 반해 화면에 고유색 붓질 30년"

춘추미술상 받은 박필현 씨…29일부터 선화랑서 초대전
"요즘 한국화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요. 문화 유산에서 우리 그림의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찾아보고자 분청사기의 고유 색감을 즐겨 사용합니다. "

오는 29일부터 내달 5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춘추미술상 수상 기념전을 여는 채색화가 박필현 씨(50)는 "한국화의 표현 방식이 서양화와 큰 차이가 없어 정신만이라도 우리의 혼을 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분청색을 적극 활용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초창기부터 수백년을 이어온 분청사기의 채색감에 주목해왔다. 그 색감을 되살리기 위해 분채(안료가루),석채(돌가루) 등을 아교(접착제)에 개 물과 함께 한지 바탕에 칠하며 색감과 공간,반사광의 다양성 등을 꾸준히 연구했다.

"먼저 한지 위에 나이테 무늬를 먹으로 찍어내고 분청 효과를 낼 수 있는 색을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며 투박한 토질의 질감을 만듭니다. 색채가 마르기 전에 밑색이 드러나도록 긁어내거나 선,무늬를 첨가하고 가볍게 드로잉을 하기도 하죠."

화면의 비움과 채움 과정을 거쳐 태어난 색감은 분청사기의 질감과 함께 또다른 물성을 갖는다. 산과 들,강,바다,꽃 등 주변의 사물들이 분청색 이미지로 응축되며 명상음악 '부다바'의 선율처럼 그 속으로 흐른다. 때로는 '움직이는 큐브'도 등장한다. "큐브만큼 자연 친화적인 것도 없습니다. 점 선 면으로 된 규브의 세상이라면 자연과 가장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큐브 이미지를 화면에 형상화했지요. "

큐브는 아침 햇살에 아롱거리는 이슬방울,저녁노을을 머금은 분꽃,논바닥에서 햇살을 기다리는 개구리,보라색 창포꽃 등 자연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분청 채색을 좋아하니까 마침내 빛(미술상 수상)을 본다"며 멋쩍게 웃는 그는 이제 색과 빛을 융합해 분청사기의 또다른 색감을 연출하고 싶어한다. 지난해부터는 영상 작업도 시도하고 있다. 분청색의 '큐브'를 하나의 조형 요소로 도입한 뒤 영상 작품을 통해 사회의 순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점차 다문화 사회로 이행해가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렸습니다. 다양한 요소들의 행복한 공존은 우리 사회가 포용해야 할 새로운 가치이기 때문이죠.이번 전시에 처음 선보인 4분짜리 영상도 다문화 사회의 공존에 역점을 둔 작품입니다. "

이 작품은 생성 · 진화 · 소멸하는 별처럼 떠다니는 큐브들로 통합과 융화의 의미를 보여준다. 춘추미술상은 한국 전통 채색화 그룹 춘추회(회장 신지원)가 매년 중견작가 1명에게 주는 상으로 창작지원금과 함께 전시회 혜택까지 제공한다. (02)374-0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