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로마인들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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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뒤에 숨어 있는 '독재의 싹'…공짜정책보다 나라 장래 걱정을15세기 피렌체의 정치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기근이 든 동안 굶주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었다고 하여 동료 로마인들에게 처형당한 어떤 부유한 로마인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전 로마 시가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고 공공 창고로도 이를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때,당시 가장 큰 부자였던 스푸리우스 멜리우스(Spurius Melius)라는 사람이 사적으로 곡물을 모아 자신의 비용으로 평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상당히 큰 무리의 사람들이 그와 한 파벌을 형성했는데,원로원은 그의 관대한 발상이 낳을 수 있는 분란을 우려한 나머지,그것이 더 큰 세력으로 성장하기 전에 억제하기 위해 임시 독재 집정관을 임명하여 그를 처형하고 말았다. "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가 자못 흥미롭다. "여기서 우리는 좋아 보이고 합리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경우 초기에 시정되지 않는다면 죄가 되고 국가에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
로마인들의 이런 행동은 복지와 정치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긴장관계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치라는 것이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선량한 사람들의 행위까지 처벌하는 비열한 작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가. 분명 로마인들은 복지보다는 자유의 가치를 더욱 선호했던 것 같다.
정치란 단지 권력을 잡기 위해 표를 모으거나 인기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게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로마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의식주 및 의료 등에 대한 필요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복지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복지제공자를 처벌한 로마인들의 태도는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어떤가. 정치인들은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온갖 달콤한 약속들을 함으로써 표를 얻으려 하고 있다. 반값등록금,반값아파트,무상급식,무상보육 등 공짜 시리즈가 봇물 터지듯이 나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회는 고대 로마인들처럼 "참주나 독재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며 그들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복지욕구를 채워주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정치인들이 더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고 "무상복지보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라"고 충고하는 경제계 수장을 청문회에 불러내 본때를 보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 한국의 국회다.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자유를 갈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물론 그렇게까지 단언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산타클로스가 아닌데도 무상복지를 주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는 한국의 정치인들이 왜 로마인들과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 냉정한 성찰의 대상이다.
시장에서 실패하여 '루저'가 되고 빈곤의 나락에 빠지는 서민들을 배려하고 빵을 줄 수 있어야 따뜻한 사회다. 그러나 모든 시민들을 보편적 자선과 돌봄의 대상으로 삼을 경우,정치인들에게는 항상 해야 할 '도움과 배려의 아젠다'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무엇일까. 혹시 복지를 빌미로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마구 휘두르게 되지는 않을까. 바로 그것이 고대 로마인들이 정치인들의 복지제공 의도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냈던 이유다. 그들은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자비로운 행위 속에 '참주정',즉 독재의 싹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로마인들의 이런 우려는 기우일까,아니면 맞는 말일까. 모름지기 21세기 한국의 정치인들이 대답해야 할 차례다.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