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활동 옥죄는 국회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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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비판하자 '기업 때리기'…고용창출·물가안정이 진짜 민심경제계와 정치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반값 등록금과 감세(減稅) 철회 등의 정책은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나왔다"고 비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 '재벌 때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서민들의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판하는 일은 으레 있는 일이고 그런 비판에 정치권은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허 회장이 용감하게(?) 쓴소리를 하자 여야 정치권이 일제히 발끈하고 나섰다. 허 회장이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더라도 '재벌 때리기'를 할 판인데 딱 걸린 것이다. 국회는 전경련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과 기업총수를 불러 따지겠다고 한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출석요구를 하고 나섰다. 여러가지 의견을 듣고 입법 활동에 참고 하겠다는 게 아니라 재계 인사들에게 호통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나라당은 '부자감세'라는 틀에 스스로 갇혀 감세기조를 후퇴시키더니 지난 4 · 27 재 · 보선에 지고 나서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와 정국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안팎으로 분란만 일으키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절규가 포퓰리즘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며 반값 등록금을 비판하는 대기업 대표들을 비난한다. 필자는 학생과 학부모의 절규만 들리고 먹고 살기 어려운 국민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는지 묻고 싶다.
진짜 민심은 일자리를 만들고 물가도 잡고 먹고사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인데 정치권은 '재계 때리기'를 원하는 게 민심이라고 오판한다. 서민들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불만인데 정치권은 그 불만을 재계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업을 때리면 국민들이 잘 사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비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와 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걸 외면하고 대학의 구조조정방안은 내놓지 못하면서 투표권을 가진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답답하고 참담하다. 왜 반값 등록금만 가지고 떠드는가. 국회의원 세비와 정당 보조금을 반으로 줄이면 안 되는가.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 또 어떤가. 기름값도 음식값도 아파트값도 반으로 줄이면 안 되는가. 반값이 아니라 통 크게 무상으로 하면 안 되는가.
일반국민이야 반값이든 무상이든 혜택이 많은 걸 싫어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혜택을 베풀면 혜택을 보는 사람을 위해 누군가는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빚을 낸다 해도 결국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
복지에 많은 자원과 재원이 투입되면 다른 중요한 일은 포기하거나 뒤로 미뤄야 한다.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선거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동시다발적으로 무엇이든 하려한다. 반값이든 무상이든 또 어떤 복지든 그건 일시적으로 하는 '왕창세일'과는 다르다. 한 번 시행하면 지속적으로 부담은 늘어난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통 큰 주장을 쏟아낸다. 그들이 화수분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감히 못할 주장이다. 선거와 표가 아무리 중요해도 경제를 포퓰리즘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에게 경제와 국가 장래를 생각하라는 건 국민의 정당한 요구다. 국민의 뜻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싸움하면서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오만은 거두어야 한다.
포퓰리즘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지 못하게 한다면 국민이나 기업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신세'가 된다. 기업도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기업의 행태가 못마땅하다 해도 기업을 옥죄는 국회의 횡포는 도를 넘고 있다.
류동길 <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