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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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후버는 1924년부터 무려 48년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냈다. 재직 기간 중 대통령이 8명이나 바뀌었는데도 요지부동이었다. 비결은 도청에 있었다.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층 정보가 낱낱이 담긴 비밀 파일을 들고 있었던 거다. 1971년엔 FBI가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를 불법도청했다는 증거가 언론에 폭로됐는데도 자리를 지켰다. 한때 백악관 침실에서 잠옷 차림의 대통령과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루스벨트가 나치 침투에 대비해 FBI의 도청을 허용한 게 발단이 됐다고 한다. 후버는 국가안보라는 명목 아래 대외 정보뿐 아니라 정치인들의 비밀까지 수집해 루스벨트에게 제공해 신임을 얻었다. 1960년대 중반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묵는 호텔에 도청장치를 해 혼외 관계 등 사생활을 캐냈다. 19개나 되는 테이프 복사본을 킹 목사에게 보내 반정부 활동을 중단하라고 협박했다. 케네디 형제의 여자 관계에 관한 자료를 연임의 무기로 쓰기도 했다. 미국 의회는 후버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1976년에야 FBI 국장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했다. 프랑스에서도 미테랑 대통령 시절 엘리제궁이 주도한 도청 사건이 1993년 드러났다. 엘리제궁 비밀팀이 1982년부터 3년간 그린피스 선박 침몰 사건,미테랑 대통령 혼외 딸 문제 등에 대한 정보 통제를 위해 르몽드 주필,전기 작가 등 150여 명을 도청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안기부 비밀조직 '미림팀'의 X파일 사건이 불거졌다. 1990년대 정계 관계 재계 언론계의 대화를 불법도청한 테이프가 흘러나왔다. 국가안보를 책임져야 할 요원들이 엉뚱한 곳을 도청한 것도 모자라 돈 받고 테이프를 팔아먹기까지 한 사건이었다. 이번엔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도청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 내용을 한나라당이 도청했다며 민주당이 수사의뢰서를 냈다.
민주당은 28일 국회의장을 찾아가 국회 시설 전반에 대한 점검과 대책마련을 요구할 방침이고,한나라당은 국면전환용 정치공세란 입장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국회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국가재정이야 파탄나든 말든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다가 느닷없는 도청 논란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임시국회 회기를 또 까먹게 생겼으니 말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루스벨트가 나치 침투에 대비해 FBI의 도청을 허용한 게 발단이 됐다고 한다. 후버는 국가안보라는 명목 아래 대외 정보뿐 아니라 정치인들의 비밀까지 수집해 루스벨트에게 제공해 신임을 얻었다. 1960년대 중반엔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묵는 호텔에 도청장치를 해 혼외 관계 등 사생활을 캐냈다. 19개나 되는 테이프 복사본을 킹 목사에게 보내 반정부 활동을 중단하라고 협박했다. 케네디 형제의 여자 관계에 관한 자료를 연임의 무기로 쓰기도 했다. 미국 의회는 후버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1976년에야 FBI 국장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했다. 프랑스에서도 미테랑 대통령 시절 엘리제궁이 주도한 도청 사건이 1993년 드러났다. 엘리제궁 비밀팀이 1982년부터 3년간 그린피스 선박 침몰 사건,미테랑 대통령 혼외 딸 문제 등에 대한 정보 통제를 위해 르몽드 주필,전기 작가 등 150여 명을 도청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안기부 비밀조직 '미림팀'의 X파일 사건이 불거졌다. 1990년대 정계 관계 재계 언론계의 대화를 불법도청한 테이프가 흘러나왔다. 국가안보를 책임져야 할 요원들이 엉뚱한 곳을 도청한 것도 모자라 돈 받고 테이프를 팔아먹기까지 한 사건이었다. 이번엔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도청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 내용을 한나라당이 도청했다며 민주당이 수사의뢰서를 냈다.
민주당은 28일 국회의장을 찾아가 국회 시설 전반에 대한 점검과 대책마련을 요구할 방침이고,한나라당은 국면전환용 정치공세란 입장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국회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국가재정이야 파탄나든 말든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다가 느닷없는 도청 논란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임시국회 회기를 또 까먹게 생겼으니 말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