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중기과학부 기자 현장 체험] 10년 후 생각하는 직원들…"강소기업 저력 느꼈죠"

◆ 티브이로직

방송용 모니터 85% 점유…英·日 등 41개 방송국 수출서울 구로동과 가산동에 걸쳐 있는 구로디지털밸리는 1970년대 섬유·봉제·전자부품 산업의 수출 전진 기지였다.

당시 단층 공장은 이제 아파트형 공장 숲으로 바뀌었고,정보통신·전자 관련 벤처기업들의 메카로 변신했다.

한국경제신문 중기과학부 기자 6명이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24일 오후 이곳에 입주해 있는 우심시스템과 티브이로직에서 근로 체험을 했다. 3단지 에이스하이엔드8차 아파트형 공장에 위치한 티브이로직(대표 이경국)은 방송용 모니터 제조업체.9층에 있는 공장은 완성된 제품을 미국 유럽 등 배송국가별로 분류하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직원 수 70명의 작은 회사지만,이 업체의 제품은 우리나라 방송용 모니터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영국 BBC,일본 NHK 등 세계 41개국 방송국에 납품한다. 소니,파나소닉 등과 함께 이 시장에서 기술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이다.

한쪽에는 직원용 카페테리아,북카페 형식의 라운지,전용 강의실 등 깔끔한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직원 몇몇은 원두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었다. 내부는 밝고 쾌적했다. 이진오 전무(54)는 "요즘 아파트형 공장들은 전부 이렇다. 시커먼 연기가 나오는 옛날 공장을 생각하면 안 된다"며 웃었다.

이 전무는 '직원들 모두 회사의 장기 비전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수주 현황과 생산성을 공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은 9인치 소형 모니터(LVM-091W-M)를 조립하는 체험에 나섰다. 앞판과 뒤판에 배터리,스피커,스위치,PCB(인쇄회로기판) 등 부품을 하나씩 매뉴얼대로 조립해 나갔다. 나사를 박는 과정에서 애를 먹었다. 전동드라이버를 쓸 때 힘 조절을 잘못하거나 수평을 잃으면 나사가 비뚤게 박히기 때문이다. 피곤한 눈을 비벼가며 앞쪽과 뒤쪽 면을 연결하고,외부 스탠드 조립까지 완성하자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주부근로자들은 평소 5대를 조립하고 남을 시간이었다. 이렇게 네 명의 여성근로자들이 한 달 평균 1800대를 생산한다. 이후 색온도 보정,내열성 테스트 등 일주일 동안 정밀검사를 거친다.

신승용 대리(34)는 "모든 부품은 직원 실명으로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ERP)에 기록돼 추적이 가능하다"며 "사후에 리콜을 당해도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172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6월 결산법인) 올해는 25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이 중 80%가 수출에서 나온다.

이곳에선 '공장'하면 흔히 떠올리는 열악한 작업 현장을 체험할 수 없었다. 오히려 쾌적한 환경과 작은 부속품 하나까지 철저하게 품질을 관리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이 시대 '강소기업'의 힘이 뭔지 뚜렷이 볼 수 있었다.


◆ 우심시스템

모바일프린터 '강자'…獨·日 등 60여국에 수출
반나절에 박스 400개 포장하니 금세 '땀방울'

구로디지털밸리 3단지 아파트형공장 대륭테크노타운3차 5층에 있는 우심시스템(대표 이일복) 은 모바일프린터를 만드느라 분주했고 옆방에선 포장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공장 안은 호텔처럼 깨끗했고 냉방을 한 덕분에 시원했다.

이 회사는 개인휴대단말기(PDA)용 프린터나 택시의 영수증 발급기,경찰의 스티커 발급용 프린터 등 초소형 모바일프린터를 만드는 업체다.

연매출 80여억원 규모의 작은 기업이지만 뜻밖에도 60여개국에 수출하는 강소기업이다. 주요 수출국은 독일 일본 미국 등으로연간 수출액은 300만달러가 넘는다.

이 회사의 이영연 이사(45)는 "10년 앞을 내다보는 신제품과 다양한 기종으로 세계시장을 파고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에선 우심시스템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가진 젊은이들과 가족을 부양하는 40대 여성근로자들이 조화를 이루며 일하고 있다.

연구개발직 12명을 포함한 전체 직원은 45명.우심시스템은 중소기업이지만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종업원이 대학에 진학하면 학자금 70%를 지원하며 자녀가 진학하면 인원에 관계없이 50%를 준다. 혼자 몸으로 가정을 이끄는 40대 여성근로자 K씨도 이 자금으로 딸을 대학에 보냈다. 여성근로자의 경우 출산휴가 외에 추가로 3개월 동안 주중 하루는 집에서 쉬도록 배려하고 있다.

모바일프린터를 포장한 뒤 대한통운 영업소로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기자들이 맡은 업무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부속품을 상자에 담자 10년 경력의 이장순 씨(51)가 소리쳤다. "아무렇게나 담으면 큰일납니다. 모든 걸 다시 해야 하잖아요. 프린터와 박스에 적힌 시리얼 넘버에 맞춰서 정확하게 포장해야 합니다. "

프린터 10대가 담긴 박스의 무게는 약 15㎏.한 개의 팔렛에 28개씩 쌓은 뒤 다시 트럭에 싣는다. 반나절 동안 직원들을 도와 400개 박스에 제품을 담고 팔렛에 적재하자 얼굴에는 금방 땀방울이 맺혔다.

이일복 대표(53)는 1994년 서울 독산동에서 5명으로 창업했다. 당시에는 청계천에서 부품을 사다가 조립하는 영세기업이었다. 2000년대 들어 경기가 나빠지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회사가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2003년 하노버 세빗전시회에서였다. 이곳에서 무려 1만대의 주문을 받은 것이다.

김낙훈/하헌형/정소람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