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임금피크제' 있으나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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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불리…'뭉칫돈' 받는 희망퇴직 선호기업은행에선 작년 192명이 퇴직 대상이었다. 이들 중 임금피크제를 선택한 사람은 단 9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퇴직금 외에 2년6개월치 급여를 추가로 받고 은행을 떠났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자녀 학자금 문제만 아니면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이 수년 전부터 앞다퉈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유명무실화하고 있다. 국민 · 우리 · 하나 · 기업 · 외환 등 각 은행의 퇴직 대상자들이 임금피크 대신 '뭉칫돈'을 챙길 수 있는 희망퇴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만 55세가 되면 임금피크제를 자동 적용하고 있는 국민은행에선 작년 정규직 중 1878명이 퇴직했다. 경영진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희망퇴직을 독려하긴 했으나 임금피크제를 선택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은행 측도 크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희망퇴직자에 대해 최대 36개월치 특별퇴직금을 부여한 데다 전원 새 일자리를 알선해 줬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임금피크제를 기피했다"고 설명했다.
매년 전직 지원제(희망퇴직)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은행에서도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는 사람이 해마다 급감하고 있다. 현재 전체 퇴직자 중 5% 선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피크제가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퇴직금 산정기준 탓이란 분석이 많다. 퇴직금이 퇴직 직전 1~3개월치 급여를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마지막 해에 받는 임금이 적으면 퇴직금도 그만큼 깎이는 구조로 돼 있다. 은행마다 희망퇴직을 수시로 진행하는 것도 임금피크제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18~36개월치 급여를 별도로 지급한다.
임금피크제의 연봉지급 기준은 은행별로 차이가 있다.
우리은행은 첫해에 종전 연봉의 70%를 지급하며 매년 10~20%포인트씩 줄여 마지막 해에 30%만 준다. 국민은행은 30개월치 급여를 5년에 걸쳐 균등 지급한다. 총액 기준으로 종전 연봉의 절반만 주는 것이다. 기업은행 역시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고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들은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실적 우수자들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마친 뒤에도 더 일할 수 있도록 재취업을 알선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작년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들의 재취업 제도를 도입해 첫해 44명,올해 51명에게 혜택을 줬다. 대구은행은 작년부터 총 20명의 퇴직자를 재고용해 후선업무를 맡겼다.
◆ 임금피크제
정년을 늘리는 대신 노사가 합의한 나이가 지나면 임금이 줄어드는 제도다. 정년 후에도 일을 계속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명예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퇴직 직전 급여를 기준으로 산정하는 퇴직금이 줄어들게 된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