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Practice] 최신 설비 뜯어내고 匠人 손에 맡겨…정통 '니혼슈' 맛으로 승부

일본 名酒 메이커 다카시미즈(高淸水)
2005년 가을이었다. 일본 북부 아키타현에 있는 니혼슈(청주 · 淸酒) 제조업체 다카시미즈(高淸水 · 사진)의 모로하시 마사히로 사장(63)은 본사 공장을 전통식 주조장으로 완전히 개조했다. 공장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기계 설비를 다 뜯어내고,옛날식 기구로 교체했다. 쌀 창고에서부터 누룩을 만드는 온실과 술 숙성실을 모두 목재와 도기로 만들어진 전통 기구로 채웠다. 3층 높이의 건물 천장은 나무 대들보가 그대로 드러나는 전통 양식으로 고쳤다. 그리고 '센닌조우(仙人藏 · 신선의 주조장)'란 간판을 내걸었다.

그해 겨울 다카시미즈는 센닌조우에서 니혼슈를 수백년간 내려져온 전통 기법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쌀 씻기에서부터 누룩과 효모 만들기,술 짜기 등을 기계에 맡기지 않고 사람 손으로 직접 했다. 숙성 과정에서 술맛을 좌우하는 온도 조절도 센서가 아닌 장인의 손에 맡겼다. 장인들은 밤낮없이 술 탱크의 온도를 재가며 냉온기에 얼음을 넣어다 뺐다 하면서 온도를 관리했다. 결과는 다음해 전국 청주감평회에서 최고 영예인 금상으로 돌아왔다.

다카시미즈는 일본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주를 만들어내는 니혼슈 회사다. 전국 청주감평회에서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금상을 수상했다. 전국에 1500개사 정도가 있는 니혼슈 메이커 중 10년 이상 연속 금상을 받은 곳은 3개사에 불과하다.

비결은 최신 설비가 아닌 장인들의 손맛에 숨어 있다. 생산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전통 술 제조 기법을 고수해 은은한 향기와 개운한 맛의 니혼슈를 창조한다. 품질을 최우선하는 고집스런 경영철학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최근 전반적인 니혼슈 시장침체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가 꾸준히 이익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인의 손맛이 품질 비결


다카시미즈의 모로하시 사장이 본사 공장을 구식 설비로 바꿀 때 주변의 경쟁업체들은 비웃었다. '최신 설비로 교체해도 모자랄 판에 구식 술도가로 바꾼다고? 장사할 생각을 포기한 건가?'그러나 모로하시 사장이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니혼슈의 전통 술맛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원래 니혼슈 주조장은 쌀 수확이 끝난 겨울 농한기에 농가의 남자들을 한시적으로 채용해 술을 만들어 왔다. 대개 같은 동네 선후배들이 모이기 때문에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전수됐다. 그러나 일본 농촌 젊은이가 줄면서 이런 전통적 기술 승계가 어려워졌다. 장인들이 점차 줄어 전통 제조기법이 아예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모로하시 사장을 움직인 것이다. 다카시미즈는 니혼슈의 전통 술맛을 잇기 위해 장인 36명을 매년 쌀 수확이 끝난 10월부터 본사 공장 옆 기숙사에서 6개월간 합숙시킨다. 서로 호흡을 맞춰 일하며,술 제조 노하우도 자연스럽게 전수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술 제조 최고책임자인 미나가와 노보루 씨(67)는 "니혼슈의 맛은 누룩과 효모 등이 좌우하기 때문에 미생물이 열쇠"라며 "결국 사람과 자연이 대화하며 만드는 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연의 변화를 꿰뚫어 보고 정성을 다해야 최고의 술이 나온다"며 "아무리 최신 설비를 갖췄더라도 이런 자연과의 관계를 잊으면 좋은 술을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카시미즈가 니혼슈 제조의 모든 과정을 굳이 장인의 수작업에만 맡기는 이유가 여기 있다.

◆원료 조달부터 풀라인업

다카시미즈가 전통의 술맛을 지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품질 최우선주의'다. 이 회사는 쌀 재배에서부터 주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품질경영을 추구한다. '품질은 100만명의 세일즈맨'이란 캐치 프레이즈는 이 회사의 품질에 대한 신념을 대변한다.

다카시미즈는 술맛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원료 쌀부터 직접 관리한다. 좋은 쌀에서 좋은 술이 나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 니혼슈용 쌀을 전량 계약 재배한 뒤 볍씨를 깎는 도정도 자체 정미소에서 직접 한다. 일본의 니혼슈 제조회사 중 자체 정미소를 갖고 있는 회사는 10%도 안된다. 또 정미 비율(쌀을 깎아내고 남은 비율)도 다카시미즈는 61.3%로 전국 평균(66.6%)보다 낮다. 그만큼 쌀을 더 깎아 순수한 알갱이만 쓴다는 얘기다. 니혼슈는 정미 비율이 낮을수록 고급 술이다.

니혼슈의 품질을 가르는 누룩도 다른 회사에 비해 많이 쓴다. 일본에선 니혼슈의 누룩 배합 비율을 15% 이상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카시미즈는 누룩을 25% 이상 섞어 술을 만든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품질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아키타현에 있는 술 제조공장 중 유일하게 클린룸을 완비하고 있기도 하다. 위생에도 철저히 신경 쓴다는 뜻이다.

◆한국 등 수출로 활로


다카시미즈의 노력과 무관하게 일본의 니혼슈 시장은 오래전부터 불황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술을 마시는 사람 수가 급격히 줄고 있어서다. 니혼슈의 일본 내 소비량은 10년 전에 비해 40%나 감소했다. 그로 인해 적자에 허덕이다가 문을 닫는 술 주조장이 속출하고 있다. 일본의 니혼슈 제조업체는 2000년 1977개사에서 지난해 1600개사 정도로 20% 가까이 줄었다.

다카시미즈는 니혼슈 시장의 침체를 '전통적 제조'와 '품질'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힘을 쏟고 있는 게 수출이다. 이 회사는 몇 년 전부터 진로재팬을 창구로 미국 브라질 한국 등에 니혼슈 수출을 시작했다. 현재 수출 물량은 전체 생산량의 0.5%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비율을 10년 안에 5%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특히 거리상 가까운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 대한 수출에 전력투구한다는 방침이다. 모로하시 사장은 "장인들이 대대로 물려 내려온 전통 기법으로 제조한 다카시미즈의 니혼슈는 일본인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입맛도 사로잡을 것으로 믿는다"며 "수출로 내수 불황을 뚫고,정통 니혼슈의 맛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키타현=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