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세계화 나선 서양인 1호 한의사

로이어 자생한방병원 국제센터장 관광공사 홍보대사 맡아
"독일엔 진료할 때 침술을 활용하는 양의가 5만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침술은 중의학'이라고 인식하고 있죠.K팝이 유럽을 흔들고 있는 지금이 바로 한의학의 세계화에 눈을 돌릴 땝니다. "

국내 최초의 서양인 한의사이자 지난달 한국관광공사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된 라이문트 로이어 자생한방병원 국제진료센터 원장(47 · 사진)은 29일 기자와 만나 '한의학 세계화' 얘기부터 꺼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침술이나 뜸 등이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럽인들이 최근 동양의학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양인 체질에 맞는 한의학을 과연 외국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우문이자 기우였다. 로이어 원장은 책상 서랍을 열고 수십 통의 편지 가운데 한 통을 꺼내보였다. 이탈리아인 부부가 2006년 보내온 편지였다. 결혼 후 임신이 되지 않아 포기했는데 한국에 와 한방치료를 받고 임신 24주째 접어들었다는 감사의 글이 담겨 있었다.

"유럽에선 침술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찰스 영국 왕세자는 오래 전부터 침을 맞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흑인이나 백인도 침술이나 뜸,한약으로 큰 효과를 보고 있어요. 바이엘 등 유명 제약사들이 만든 규격화된 한약을 역수입하는 날이 오기 전에 젊고 패기있는 한의사들이 하루빨리 세계 무대로 진출해야 합니다. "

최근 한국관광공사 측과 브라질을 다녀온 로이어 원장은 남미시장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브라질에선 하루 입원비가 일반 병원의 경우 120만원,최고 수준의 병원은 500만~1000만원으로 살인적이었다"며 "유럽시장과 함께 남미시장도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기지로 삼을 만하다"고 조언했다. 대한한의사협의회 국제이사와 대한약침학회 국제이사 등을 맡고 있는 로이어 원장은 베트남 이집트 유럽 등 해외 의료관광설명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한의학을 알리기 위해 3년 전 배운 골프도 끊었다. 그의 책상 한 켠엔 가루,알약,팩에 든 한약 견본과 영어로 된 안내 소책자가 자리잡고 있다. 외국인이 방문했을 때 한의학을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부교재'다.

한의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열정을 보이는 로이어 원장의 한국생활은 올해로 23년째다.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 1년 만에 자퇴하고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4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1987년 3개월 일정으로 한국 여행을 왔다. 이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태권도를 배우다 발을 삐었는데 사범이 데리고 간 곳이 한의원이었어요. 긴 바늘(침)을 귀에 놓는 것도 이상했는데 통증이 곧바로 가셔 깊은 인상을 받았죠."

고향으로 돌아간 로이어 원장은 1989년 한의학을 배우기로 작심하고 한국을 다시 찾았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우고,강릉대에서 동양철학을 1년 공부한 뒤 1991년 대구한의대에 입학했고 1999년 졸업,국내 최초의 서양인 한의사가 됐다. 대구한의대 다닐때 한국인 아내를 만나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2009년엔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됐다.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