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차라리 '뻔뻔' 문화가 낫다

최근 삼성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래 경연대회가 있었다. 케이블TV 히트방송을 본떠 '수퍼스타S'라고 이름 지은 이 행사에는 2600여명의 직원이 참여했다. 최종 결선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초동 본사에서 열렸다. 1등 상품의 가치가 1000만원어치나 됐으니 직원들을 단합하게 하고 들뜨게 한 '펀(fun)경영'의 좋은 사례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그 행사 기사를 읽으며 씁쓸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과연 우리 기업에 지금 시급한 것이 '펀 경영'일까? 조직의 활성화에는 즐거움이 도움이 될까 아니면 긴장감이 더 나을까?

기업에 시급한건 긴장 아닐까마침 이스라엘 벤처문화의 사례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이스라엘의 '후츠파(chutzpah)'정신(본지 6월28일자 6면 참조)이라는 주목할 만한 개념을 만날 수 있었다.

'후츠파'는 주제넘은,뻔뻔스러운,철면피,놀라운 용기,오만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다른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스라엘만의 고유 단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라나면서 학교든 집이든 회사든 군대든 어디에서든 강한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올바른 가치기준이라고 배우고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느님 외에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이 정신은 비즈니스에서 새로운 창의성을 높이고 최고의 결정을 내리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후츠파'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직함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때 가능하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이런 문제를 별명 활성화로 해결했다. 이스라엘 고위 지도자들은 대부분 별명을 갖고 있고 어린 사람들도 면전에서 그의 별명을 격의없이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벤야민 네타냐후 전 총리의 별명은 '비비'였다. 《창업국가》의 저자 사울 싱어는 "유대인이 두 명 있으면 의견은 셋"이라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쓸데 없는 심리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어는 책에서 인텔 이스라엘연구팀이 미국 본사 임원들을 상대로 수개월간 설득한 끝에 마침내 '센트리노 칩' 개발 결심을 받아낸 사례를 자세히 소개하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태도의 밑바탕에 깔린 것이 바로 '후츠파'정신"이라고 강조했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구글 페이스북 등 벤처문화를 바탕으로 한 신생기업이다. 이들의 유연성을 배우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이 바로 '뻔뻔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장이 신제품 모델 몇 개를 놓고 "이거 어때?"했을 때 과감하게 '별로입니다!'라고 자기 주장을 밝힐 수 있는 간부들이 얼마나 될까? 잘못되면 책임지게 될까봐 몸을 사리는 직원들이 더 많은 건 대기업에서 흔히 보는 조직적 병폐다.

도전적인 '후츠파' 정신 주목조직이 딱딱해지면 혼자 하면 금방 내릴 결정도 빙빙 돌게 되고 왜곡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 딱딱한 조직을 '펀 경영'으로 녹일 것인가, 아니면 '뻔뻔 경영'으로 부술 것인가.

물론 후츠파 정신 혹은 뻔뻔 경영을 위한 우리의 기반은 거의 없다. 여전히 직급을 버리지 못하고 상의하달식 의사결정에 익숙해 있다. 차라리 별명부르기,직함없애기,맞짱토론 등의 시도가 나와야 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공개적으로 시도했다는 뉴스를 보고싶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