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전막후] 반전 거듭한 '대한통운 인수戰'

채권단 "CJ, 12만원을 21만원으로 쓴 거 아냐?"

CJ 입찰가에 깜짝 놀라…채권단, 두번세번 확인
포스코, 서류 3개나 준비 "가장 센 것 냈는데…"

대한통운 인수전은 반전을 거듭한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는 게 인수 · 합병(M&A) 업계의 평가다. 본입찰을 나흘 앞두고 삼성SDS가 포스코 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 포스코-삼성 연합군 대세론이 급부상했다. M&A 업계에서는 '게임은 끝났다'는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삼성의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며 한때 입찰 포기까지 검토했던 CJ는 입찰 당일인 지난 27일 막판 반전을 노렸다. ◆삼성 제안에 포스코도 '깜짝'

포스코는 이달 초 삼성 측 제안을 받고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점은 삼성 측의 '조건'이었다. 삼성 측은 "컨소시엄에 참여해 5%의 지분만 확보할 수 있다면,향후 대한통운의 이사회 참여나 추가 지분 확보 요청을 하지 않겠다"며 "인수에 성공할 경우 삼성SDS의 물류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사업에 활용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당시 삼성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이 왜 경영권도 없는 5%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포스코와 손잡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당시에는 포스코가 인수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고,대한통운 물류 IT 사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발을 걸쳐야 했다"고 말했다. ◆삼성과 CJ의 싸움으로

포스코와 삼성의 '2인3각'은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보름여 만에 컨소시엄 구성에 합의했다. 이 때까지 CJ는 삼성과 포스코가 손잡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미 삼성증권과 인수자문 계약까지 맺은 CJ는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삼성증권으로부터 구두로 받아둔 터였다.

본입찰을 나흘 앞둔 23일.삼성이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CJ 내부에선 '난리'가 났다. "삼성이 뒤통수를 때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증권의 자문계약과 관련해선) 지난 22일 금융계열사 사장단과 식사를 하는데 삼성증권 사장이 그 얘기를 꺼내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재현 회장,마감 직전 '결단'

본입찰 당일인 27일 오후.포스코는 대한통운 인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시나리오에 맞춰 입찰제안서를 3개나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나 CJ의 참여 여부에 따라 다른 인수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포스코는 본입찰 당일 롯데와 CJ가 모두 참여한다는 판단 아래,준비했던 입찰제안서 중 가장 '센' 것을 골랐다. CJ 측에선 이재현 그룹 회장이 오후 내내 장고를 거듭한 끝에 본입찰 마감 2시간 전인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인수 가격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론은 파격적 베팅.포스코-삼성 컨소시엄을 가격 부문에서 확실히 따돌려야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과적으로 포스코의 인수 가격은 CJ에 미치지 못했다. M&A 업계 관계자는 "CJ가 본입찰에 참여할 경우 분노의 베팅에 나설 것이란 점을 포스코와 삼성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21만5000원" CJ에 거듭 확인28일 오전 10시.산업은행 등 매각 주체 및 주관사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입찰제안서에 기재된 인수 가격을 함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봉투를 뜯은 담당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CJ가 제시한 가격은 주당 21만5000원.포스코가 적어낸 가격 19만1500원보다 2만3500원이나 많은 베팅이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서류를 처음 봤을 때 12만5000원인 줄 알았다"며 "다시 보니 1과 2의 숫자가 바뀌어 있더라"고 전했다.

매각주관사 측은 곧바로 CJ 측에 전화를 걸었다. 유상증자 가능성과 자금조달 여부,이 회장의 의지 등을 수차례에 걸쳐 확인했다. 매각주관사 측이 28일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시간을 계속 미루다 저녁이 다 돼서야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창민/김철수/이태명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