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美 공화당과 대처의 유산

美 실업,70년대말 英과 닮은 꼴
내년 대선은 시장과 정부의 대결
1978년 영국 경제는 위기였다. 영국 전체 노동인구의 5.1%인 150만명이 실업상태였다.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1976년 24.2%,1977년엔 15.8%였다. 영국 경제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사회 전체엔 무력감이 팽배했다. 당시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은 1979년 총선을 앞두고 실업문제에 초점을 맞춰 집권당의 실정을 꼬집는 선거 포스터를 제작한다. 포스터엔 커다랗게 "노동당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는 문구와 함께 일자리를 찾기 위해 길게 S자로 늘어선 사람들의 사진을 넣었다. 제임스 캘러핸 총리는 의회에서 포스터에 불만을 표시했고,데니스 힐리 재무장관은 "보수당은 분말세제 팔듯이 정치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포스터는 보수당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보수당은 총선에서 승리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 선두주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이 전략을 다시 쓰고 있다. 롬니는 "오바마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 롬니는 오바마 행정부의 고용정책 실패를 선거 캠페인의 전면에 내세울 태세다. 미 대통령 중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실업률이 7.2% 이상일 때 재선에 성공한 현직 대통령은 없었다. 미국의 6월 실업률은 9.1%다. 여기에 영구실업자 250만명과 잠재적 실업자 870만명을 더하면 실업률은 16.5%로 치솟는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한 것은 대처가 집권한 이후 영국의 실업률은 두 배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1983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다시 압도적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실업자는 300만명으로 늘어났다. 영국 국민들은 자신들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다. 실업률이 다시 1978년 수준으로 돌아올 때까지 20년을 인내해야 했다. 대처는 "강력한 개혁 외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만약 대처가 집권하지 못했다면 영국 경제는 노동당의 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제 3세계 수준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롬니가 대처의 후광을 얻고 싶다면 실업의 그림자도 떠안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대처의 선거 홍보 문구만 베끼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롬니는 문구에 담겨 있는 대처의 배짱과 안목뿐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정치 · 경제적 이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년 미국 대선은 케인스주의와 하이에크주의의 대결이 될 것이다. 양적 완화,공적 자금,부자 감세 철폐 등으로 대변되는 오바마의 경제정책은 정부 재정지출 증가를 주장했던 케인스의 '일반이론'과 같은 맥락이다. 일반이론은 정부의 구매력을 높여 경기를 자극하는 '펌프에 물 붓기(priming the pump)'가 핵심 내용이다. 반면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의원의 연방 적자 해소 정책으로 대표되는 공화당의 입장은 하이에크의 시장옹호론과 맥이 닿는다. 하이에크는 정부의 실패는 정부의 역할 축소와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민들은 내년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앤드루 로버츠 英 역사학자ㆍ저널리스트 / 정리=정성택 기자 naiv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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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앤드루 로버츠 영국 역사학자 겸 저널리스트가 '공화당과 마거릿 대처의 유산(Republicans and the Thatcher Legacy)'란 제목으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