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9693개 중 절반이 거래 안되는데…거래소, ELW 외형 키우기에만 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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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성 '극외가격' 우후 죽순
상장 한달만에 퇴출도 속출
LPㆍ상장규정 재정비 시급
1만여 종목에 달하는 주식워런트증권(ELW) '난립' 속에 투자자도 업계도 길을 잃고 있다. 발행 종목 중 거래가 이뤄지는 종목은 절반에 못 미친다. 투자자 외면 속에 발행 한 달 만에 폐기되는 종목도 부지기수다.
상품은 쌓여있는데 살 것은 적다 보니 스캘퍼의 '개미 유도 작전'이 판을 치게 됐다. 양적 성장에만 초점을 둔 한국거래소의 허술한 관리 정책이 문제로 떠올랐다. ◆'거래량 제로(0)'종목 절반 넘어
지난해 10월 하루평균 2조원을 넘나들던 거래대금은 1조225억원(5일 기준)으로 위축됐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ELW 발행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5일 현재 상장된 종목 수는 9693개로 작년 7월5일 6246개 종목에서 1년 사이 55.18% 늘어났다. 이 같은 추세라면 종목 1만개를 넘기는 것도 시간문제다.
하지만 거래 실상은 다르다. 하루 한 번이라도 거래가 일어난 종목 비중은 지난달 말 기준 45.98%에 불과했다. 지난해 6월 말 52.00%에서 갈수록 하향 추세다. 발행 후 한 달간 거래가 없어 퇴출되는 종목까지 합산하면 실제 거래율은 더 낮다. 지난 4일에만 8개 증권사가 발행한 24개 종목이 유동성공급자(LP) 보유 후 한 달간 거래 변동이 없어 상장 폐지됐다. ◆한국거래소 수입만 불려
만기 3개월 이상 중장기물만 상장하도록 한 발행 규정이 근본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거래소는 리스크가 높은 극외가격 ELW 투자를 막기 위해 단기물 상장을 규제하고 있다. 문제는 발행사가 3개월 이후 기초자산 움직임을 알 수 없어 행사가만 다른 상품을 우후죽순으로 발행하게 된다는 점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만기 40일 이내 등가격(행사가격이 기초자산 가격과 동일한 상태) ELW에 거래가 가장 몰리는데,그 시점에 어느 상품이 해당될지 알 수 없다"며 "코스피200지수가 265~310까지 갈 것 같다면 행사가 5포인트 간격으로 상품을 '깔고(다 발행하고)',자금 여력이 되는 대형사는 2.5포인트 간격으로 깔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행사는 ELW 한 종목을 상장할 때마다 거래소와 금감원 등에 210만원가량 수수료를 낸다. 투자 현실을 무시한 규정 때문에 거래소 수입은 불어나는 반면,증권사들은 불필요한 발행 비용을 투자자에게 전가하게 된다.
다양한 행사가격이 난립하다보니,시일이 지나면서 '도박'에 가까운 극외가격 ELW는 더 많이 양산된다. B증권사 연구원은 "비슷한 ELW가 난립하다보니 거래량이 많은 종목에 쉽게 현혹된다"며 "스캘퍼(초단타 매매자)가 시장을 좌지우지하기 손쉬운 이유"라고 지적했다.
◆외형 키우기에만 급급해선 안 돼
한 전문가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 발행 규정으로 거래소만 배를 불리고 있다"며 "시장 외형 키우기가 아니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투자 현실에 맞게 발행 과정을 정비하는 것뿐 아니라 시장 관리에서도 내실을 다져야한다는 것이다. 외면받는 분기별 LP제도를 실효성 있게 고치는 것이 한 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거래소는 홍콩 등 해외 시장과 비교해 규제가 촘촘하다고 하지만 얼마나 제대로 역할을 하느냐가 문제"라며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우수 LP를 표시하거나 LP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 작은 조치로도 건전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 극외가격
deep out of the money.외가격은 현재 옵션이나 ELW의 권리를 행사하더라도 행사 가치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콜옵션이나 콜ELW에서는 기초자산 가격이 권리행사 가격보다 낮을 때가 외가격이다. 외가격 중에서도 행사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을 극외가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