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폭력쓰는 동거남 죽인 여자는 정당방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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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재발견 | 석지영 지음 | 김하나 옮김 | W미디어 | 358쪽 | 1만9800원
석지영 하버드대 종신교수, 집이라는 공간서 벌어지는 법률적 문제 새롭게 해석
라틴어로 '모든 사람의 집은 그의 성(城)'이라는 말이 있다. 영미권에선 역사적으로 집이 갖는 법률적 의미가 '개개인의 거주지에 대한 안전'이었다. 17세기 영국의 판사 겸 정치가인 에드워드 코크는 "개인의 집은 성이자 요새일 뿐만 아니라 상해 및 폭력에 대항하는 자신의 방위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18세기 옥스퍼드대 법학교수인 월리엄 블랙스톤은 "영국 법은 남성의 집에 대한 면책권을 고려해 그의 성을 보호해주고 형벌을 면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公)과 사(私)의 공간을 구분하고 정부 및 공권력의 간섭을 막아주던 집의 개념은 범죄,폭력,섹스,가족,사생활,자유,재산 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게 석지영 하버드대 종신교수(38)의 설명이다. 정부와 개인의 관계에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것도 바로 집이라고 한다. 《법의 재발견》은 지난해 아시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가 된 저자가 2009년 미국에서 출간한 첫 책이다. 일상의 장소인 집을 둘러싼 법률적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했다. 그가 2006년부터 하버드대 조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형사법과 가족법을 넘나들며 연구한 내용을 기초로 했다. 가정폭력과 같은 형사법 분야,사생활,여성 등의 주제를 다뤘다. 2009년에 최우수 법률서적으로 선정돼 '허버트 제이콥 상'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1980년대부터 가정폭력 문제에 초점을 맞춘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해 설명한다. 남성의 집이 그들의 성(城)인 것만큼 대개 여성이기 십상인 또 다른 거주자들에게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집이 공공의 중재나 간섭으로부터 가정폭력을 숨겨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저자는 형법이 사적인 문제로 여기던 영역을 공적인 문제로 재해석하며 발전해 온 과정들을 보여준다. 형법은 전통적으로 개인 공간에까지 관여하는 것을 꺼려왔지만 서서히 변화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와 함께 집안에 있는 상태 자체만으로도 이를 범죄화한 민 · 형사 접근금지명령이나 주거침입 관련죄 등이 대표적이다. 정당방위도 획기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관습법상 '성 안 원칙(castle doctrine)'은 침입자를 대상으로 후퇴의 의무를 지지 않고 치명적인 힘을 사용할 권리를 인정한다. 다른 사람의 집에 침투한 침입자는 남의 가정과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법의 보호가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침입자가 가족 혹은 동거주자일 때 성 안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며,피해자는 먼저 후퇴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받았다는 점이다. 1980년대 말 여성운동가들은 성 안 원칙에 대한 동거자의 예외 규정이 "전적으로 학대받는 여성들에게 적용된다"며 정당방위법이 성차별의 구체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말부터 여러 판례에서 법 해석이 변화했다. 1997년 오하이오 주 대법원 사건에서는 한 여성이 그녀의 폭력적인 동거 남성과 싸우다 그를 죽인 사건을 심판했다. 대법원은 "자기 집에 있는 여성은 이미 '벽까지' 후퇴한 것이고,더 이상 안전하게 도망갈 곳이 없는 만큼 성 안 원칙이 동거주자에게도 적용된다"고 판결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법은 제약과 자유 사이의 긴장이며 인간이 자유와 재산,이익,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기본 틀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집이 지니는 법적 의미의 변화는 부와 권력,권리 등의 재분배를 가져오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여섯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에서 영문학과 불문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불문학 박사 과정을 마친 문학도가 법학자로 변신해 낸 첫 책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 만하다. 특히 로스쿨 재학생이나 준비생,법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그렇다.
다만 독특하고 복잡한 영어 원문 표현들이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번역되면서 한국어판 책 자체의 스토리텔링이 매끄럽지 못한 게 단점이다. 일반 독자들은 '읽는 맛'보다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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