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여행] 싱싱한 갯바람 맞으며 짜릿한 손맛…'여름의 추억' 낚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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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下)
정조 孝 담긴 융·건릉, 용주사 한 서린 父子 안타까움 더하고
궁평항엔 물그네 타는 낚싯배…물 만난 강태공 설렘 더하네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비원이 서린 화산 용주사로 가는 길은 부자간의 천륜을 곱씹으며 가는 여정이다. 10세 때 아버지가 뒤주 속에 갇혀 굶어 죽는 참상을 겪은 정조는 평생 아버지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2층 누각인 천보루를 지나 절 마당으로 들어서자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목조삼세불좌상이 좌정한 뒷벽에는 서양의 음영법을 차용해 인물들의 얼굴과 손을 그린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서양화 기법을 재빨리 받아들인 19세기 말의 '얼리어답터'들이 그린 그림이다. 석가모니불 · 아미타불 · 약사불 등 삼존불과 제자상 · 천녀상들로 가득한 불국토를 바라보며 "원왕생 원왕생"을 되뇐다. 언젠가 저 완벽한 불법의 세계에 닿고 싶음이여.◆잠들지 않는 그리움으로 무덤가 잔디는 짙푸르고
높이 1.44m,입지름 0.87m 크기의 동종(국보 제120호)을 만나러 범종각으로 간다. 고려 초에 신라 종 양식을 본떠 조성한 범종이다. 구름을 타고 옷자락이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비천상이 천상에 대한 아득한 그리움으로 나그네를 이끈다. '한국의 범종'(신나라뮤직,1996) 음반으로 듣는 저 종소리는 에밀레종처럼 소리의 진폭이 크지 않지만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맑고 단아한 소리다.
1969년 용주사 중앙선원을 설립하는 등 용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인천 용화사에서 입적한 전강 스님(1898~1975) 사리탑을 찾는다. '판자때기 이빨에서 털이 난다'는 판치생모(板齒生毛)가 그의 평생 화두였다. 정조의 그리움 원천을 찾아 융 · 건릉으로 향한다. 갖가지 자세로 멋을 낸 소나무들이 즐비한 길이 펼쳐진다. 이곳 소나무를 갉아먹던 송충이를 잡아 씹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정조가 아꼈던 숲이다. 궁궐 연못을 본뜬 곤신지와 수라간을 지나 왕의 위패를 모신 정자각에 이른다.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묻힌 융릉이 저만치 보인다. 낮게 곡장이 둘러쳐진 무덤 앞에는 상석,망주석,석양 · 석호 각 1쌍,문인석 1쌍,팔각 장명등,무인석 · 석마 각 1쌍이 서 있다. 석물들이 마치 정조가 아버지를 위해 차린 밥상 같다. 그러나 한없이 애달픈 밥상이다. 제아무리 무덤을 단장한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잠재울 순 없었을 테니까. 정조 · 효의왕후의 합장릉인 건릉을 둘러본 후 제암리 3 · 1운동순국유적으로 향한다.
◆'악의 축' 일제 경찰의 천인공노할 학살 사건
마을 앞 3 · 1운동순국기념탑과 교회 뒷산에 있는 안정옥 등 23위의 순국 묘를 참배한다. 속칭 '두렁바위'로 불리는 제암리는 전형적인 씨족 중심의 농촌 마을이었다. 3 · 1운동 당시 일제 경찰의 무차별 사격 때문에 부상자가 발생하자 격분한 마을 주민들이 던진 돌에 경찰부장이 맞아 죽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보복에 눈먼 일본군은 초가 교회당에 주민을 모아 놓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후 집중 사격해 어린이를 포함한 23명의 주민을 학살한 뒤 마을의 가옥도 33채 중 2채만 남긴 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공포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도 감히 학살 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못내고 있던 차에 영국에서 건너온 의료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유골을 수습해 8개의 들것에 실어 제암리에서 10리가량 떨어진 도이리 산 31-1번지에 가매장했다.
1982년에 이르러서야 학살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전동례(1898~1992)의 증언으로 유해를 발굴해 이곳에 모신 것이다. 일본인 목사 사이토는 1919년 5월22일 '복음신보'에 실린 '어느 살육사건'이란 시를 통해 '젖먹이를 안고 숨진 젊은 엄마/ 달아나다 쓰러진 노인네들/ 시커멓게 얼룩진 이 참상이/ 그대에겐 보이지 않는가 그대는 보지 않는가'라며 그날의 참상을 고발했다.
3 · 1운동순국기념관 · 제암교회를 돌아본 후 마을 이름이자 마을의 상징이었던 두렁바위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마을 끝에 있던 두렁바위는 이미 건축 기반공사 끝에 황토 속에 묻혀 버린 상태였다. 마을 들머리 어딘가에라도 옮겨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송산면 고정리 공룡알 화석지로 간다. 광활한 간척지를 키 작은 갈대와 삘기라고도 부르는 띠꽃이 은백색 물결로 수놓고 있다. 퉁퉁마디 · 나문재 · 칠면초 등 염생식물을 바라보며 1 · 5㎞가량 나무데크를 걸어가자 비로소 화석지가 나타난다. 예전엔 섬이었던 상한염 · 중한염 · 하한염 등의 사암층 틈과 울타리를 쳐 놓은 곳에 타조알만한 둥근 공룡알 등 화석이 있다. 지금까지 200여개의 공룡알과 30여 군데의 둥지가 발견됐다고 한다. 공룡이 살던 당시의 생태계 및 자연환경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소중한 유산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어느날 갑자기 닥쳐온 재난 앞에서 제 알을 찾느라 허둥대는 공룡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서신면 궁평항으로 발길을 옮긴다.
◆들판 가득 밀려오는 해무가 빚어내는 해거름 풍경
가는 길목에 있는 궁평2리 마을의 정용래 · 정용채 가옥(중요민속문화재 제124 · 125호)을 찾아든다. 정용채 가옥은 19세기 말 부유한 농민의 'ㅁ'자형 초가집이다. 비오는 날 마루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짚시랑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으면 좋을 듯한 집이다. 대청 뒷벽에 벽장을 만들어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으로 사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윗집인 정용래 가옥은 솟을대문 · 사랑방 · 중대문을 차례로 통과해야 'ㄷ'자형 안채에 이르는 50칸 기와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 · 안방 · 찻방,사랑채와 안채가 너무 멀리 떨어진 것을 보완하기 위해 손님상을 내오기 편리하도록 안사랑방 뒤에 있는 골방을 뒷마루를 통해 안채의 대청으로 이어지도록 배려한 것이 특이하다.
이런 시골에 이만한 규모의 아름다운 집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을 이름을 궁토(宮土)가 많았던 들이란 뜻에서 궁평리라 불렀다는 것이 전혀 허랑하지 않다. 궁평항 물양장에선 출어를 기다리는 낚싯배들이 물 그네를 타고 있다. 서서히 귀항하던 바닷물이 방파제 끝에 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마치 이렇게 철저하게 깨어져야 먼 반야의 바다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설법하듯이.
방파제 피싱피어 옆에선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구럭 속에선 막막한 시간이 파닥거리고 있을 뿐이다. 수산물직판장을 돌아본 후 해송들이 우거진 궁평 솔밭유원지와 안방죽골 · 당넘어마을을 지나 함박산을 바라보며 백미리마을로 간다. 길이 좁을수록 마음은 더욱 호젓해진다.
백미리마을 물양장 앞,바다로 뻗은 시멘트 길을 타고 물 빠진 남양만 바다로 나아간다. 먼 옛날부터 남양만 고기잡이 어부들의 이정표 구실을 했을 감투섬이 바다를 바라보며 망부석처럼 서 있다. 기다림이란 얼마나 적막하고 쓸쓸한 자신에 대한 풍화작용인가를 생각한다. 언젠가 나도 막막한 삶의 바다에 저 감투섬 같은 형태로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서 있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 마을이 나그네를 환송하는 전통적 퍼포먼스인가. 갑자기 짙은 저녁 해무가 눈보라처럼 몰려오더니 논들 사이를 휘돌며 사라진다. 나도 해무의 일원이 된 듯 뒤따라 마을 밖으로 나선다.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밑반찬 어리굴젓…밥맛이 꿀맛!
건달산 오르면 서해 섬들이 '한눈에'
맛집
화성시 안녕동 180의 111,융ㆍ건릉과 보통리저수지 사이에 위치한 두래촌(031-225-0047)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추구하는 토속 한정식 전문점이다. 신선한 재료로 정성스럽게 조리한 음식에서는 예전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진다. 간장게장정식 1만7000원,꽃게무침정식 1만5000원,코다리정식 1만원.
봉담읍 왕림리 15,구가네통영굴밥(031-227-3232)은 신선한 굴을 넣고 지은 굴밥으로 이름난 집이다. 밑반찬으로 올라오는 어리굴젓을 밥에 살짝 걸쳐 올려 먹으면 입 안 가득 굴 특유의 향기가 번진다. 굴밥정식 1만1000원,알밥 6000원,멍게비빔밥 6000원.
여행정보팔탄면 기천리ㆍ봉담읍 세곡리에 걸쳐 뻗어내린 건달산(해발 367m)은 화성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서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다. 건달산은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어 소쩍새 등 희귀 새들과 멸종 위기의 양서류,반딧불이ㆍ장수하늘소가 살고 있는 청정지역이다. 산 정상에는 조선 순조 때 설치한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과천~의왕 간 고속도로→ 봉담 삼거리→ 43번국도 발안 방면 우회전→ 봉담 장안대학→ 우측으로 세곡리→ 건달산
향남읍 하길리의 뽕나무골 누에박물관은 잠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누에박물관이다. 누에박물관에서는 누에치기 시설물과 실켜기ㆍ물레잣기ㆍ뽕가꾸기 용구 등 누에 관련 자료 300여점과 누에치기 발전사,명주와 베틀,누에와 실크를 이용한 각종 제품 등을 돌아볼 수 있다,희귀곤충의 생태사진과 반딧불이 생태관,삼림욕체험장까지 갖추고 있어 전통생활과 생태의 소중함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 발안 IC→ 발안 방면 좌회전→ 수원 방면 좌회전→ 양감 방면 좌회전→ 뽕나무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