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명품과 촌부(村夫)의 보석

요즘 유럽에서 명품 매장의 최대고객은 중국 관광객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한국 관광객이 명품 매장의 주 고객이었는데 어느 새 돈 많은 중국인들에게 그 자리를 내 주었다. 아시아에 신흥 부자들이 많아지면서 명품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고가의 명품으로 자신의 가치를 좀 더 높게 포장해 보이려는 의도인가.

얼마 전 30대 커리어 우먼이 ‘다사모’에 참석했다. 그녀는 전형적인 명품 족 여성. 머리부터 발끝까지 평범해 보이는 옷차림새로 처음에는 그저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평범한 의상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은 명품들이었다. 헤어밴드부터 시작해 구두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품들로 치장한 그녀는 연봉도 꽤 많이 받는 컨설턴트였다. 그런 그녀가 최근 들어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며 말을 꺼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모이지 않아요. 별로 쓰는 것도 없는데, 일한 만큼 돈이 안 모이니 보람도 없고 아무래도 제가 돈 복(福)이 없나 봐요." 그래서 그녀는 회사를 옮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돈 복이 없어 회사를 옮긴다?' 그녀가 돈이 안 모이는 것은 복(福)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손에 낀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반지는 얼마입니까?" 그러자 그녀 입에서는 기상천외한 숫자가 튀어나왔다. 중고 경차 값과 맞먹을 정도의 가격이었다.

"실례하지만, 이 옷은 어디 것입니까?" 라고 묻자, 이번에는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명품이란다. 그리고서 덧붙이는 말. "요즘엔 작은 것도 명품을 써야 명품 족으로 인정을 받아요." 그녀는 말 그대로 명품 병 말기 환자였던 것.
명품만 사다보니 어느새 돈의 가치 기준을 잃게 되었고, 연봉이 높다보니 카드 한도 금액도 높아져 생각 없이 긁어댄 카드빚은 이제 단기간 갚을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고 말았다. 그러니 카드빚 갚으랴 새로 도착한 명품 사랴 어디 돈이 쉽게 모이겠는가. 이것이 어떻게 직장을 옮긴다고 해결될 문제겠냔 말이다.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럼 본인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비싼 보석이 뭡니까?" 그녀는 머뭇거렸다. 모든 것이 명품이지만 막상 떠오르는 게 없었던 것이다. 고민하는 그녀에게 나는 이탈리아 동화를 들려줬다.

"옛날에 한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 한참동안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보석 자랑을 했답니다. 이것저것 다 꺼내 보여주면서 자기보다 비싼 보석이 있는 사람에겐 갖고 있는 보석을 다 준다 했습니다. 그러자 한 촌부(村夫)가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와 자기한테 그런 보석이 있다면서 내일 가져오겠다 말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부자는 촌부에게 그런 보석이 있을 리 없다고 코 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부자는 자신이 갖고 있던 보석을 모두 촌부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과연 촌부가 어떤 보석을 갖고 왔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촌부의 어린 두 자식이었습니다."

동화를 듣고 말없이 고개를 숙인 명품 족 여성. 명품 때문에 자아를 잃어버렸던 그녀는 지난날을 반성하며 돌아갔지만, 그녀처럼 동화가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명품 구입으로 인해 회사를 옮겨야 하는 종속된 삶이라면, 그것이 진정 명품이 주는 행복이고 촌부의 보석보다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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