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Practice] 크리스털 제품의 대명사 '스와로브스키'

유리 크리스털을 보석으로 '격상'…전세계 女心 사로잡다

1976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이곳 올림픽 기념품 매장에서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를 끈 것 중 하나는 크리스털(수정)로 만든 생쥐 장식품이었다. 사람들은 크리스털이 접시 컵 등의 식기나 샹들리에를 장식하는 데 사용하는 보석으로만 여겼는데,크리스털 생쥐는 이런 고정관념을 깼다.

크리스털 생쥐를 만든 회사는 오스트리아 티롤주 와튼즈에 있는 '스와로브스키'였다. 크리스털 생쥐의 성공은 산골마을의 작은 회사 스와로브스키를 세계적 보석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됐다. 스와로브스키는 특수한 제조비법과 세공기술로 유리 크리스털을 여성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보석 중 하나로 격상시켰다. 이 회사는 목걸이 등 액세서리 판매 호조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아시아 등에서도 크리스털 제품의 대명사가 됐다. 스와로브스키는 오스트리아 미국 인도 태국 등 19개국에 생산 공장을 비롯해 총 42개국에 1973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1895년 설립된 스와로브스키의 세계 크리스털 제품 시장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시장이 없다면 만들어라"

크리스털 제조 · 가공회사인 스와로브스키는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이 열릴 때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기업이 아니었다. 크리스털은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B2C)하기 보다는 주로 건축업자나 식기 제조업체 등과 거래하는 제품(B2B)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 생쥐 판매로 성공을 거둔 뒤 크리스털의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와로브스키사에 따르면 이 생쥐 장식품은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많이 팔린 기념품이었다.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을 다른 제품을 꾸미는 용도로만 쓸 것이 아니라 크리스털로 된 완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자는 생각을 했다. 사실 크리스털로 목걸이나 귀걸이를 만드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크리스털에는 자연 광물인 천연 크리스털과 인공으로 만든 유리 크리스털이 있는데,천연 크리스털은 광채가 적고 다이아몬드 금 루비 등에 비해 저렴해 귀중품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이 있었다.

때문에 스와로브스키는 천연 크리스털이 아닌 유리 크리스털로 제품을 만들었다. 유리 크리스털은 천연 광물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보석이라 말할 수 없었다. 스와로브스키는 원재료 배합률과 세밀한 가공기술을 더해 이런 약점을 극복해 나갔다. 코카콜라 제조비법을 코카콜라사 경영진 일부만 알고 있듯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제조 배합률도 헬무트 스와로브스키 회장 등 스와로브스키 가문의 몇 명만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MP3 · 게임기에도 크리스털유리 크리스털을 보석의 경지로 올려 놓는 데는 스와로브스키의 세공기술이 큰 몫을 했다. 스와로브스키의 창업자인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유리 세공업자였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다양한 세공(커팅)기계를 개발했다. 다른 크리스털 제조업체들이 평균 12면 커팅기술을 보유한 반면 스와로브스키는 유일하게 28면 커팅기술을 갖게 된 배경이다.

또 스와로브스키가 시장을 꾸준히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로 마니아 집단을 빼놓을 수 없다. 스와로브스키는 홈페이지를 통해 마니아 클럽을 모집하고 있고,이 클럽에는 50만명 정도가 가입해 있다.

최근 스와로브스키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첨단제품 시장이다. MP3 디지털카메라 게임기 USB메모리 마우스 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제품들에도 크리스털을 장식해 판매하고 있다. LG전자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장식한 디오스 냉장고와 휘센 에어컨을 생산하고 있고,소니도 디지털액자 이어폰 등을 스와로브스키와 함께 만들고 있다. 스와로브스키 장식을 하면 고급 제품이란 이미지를 주고 판매가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앞다퉈 스와로브스키와 손을 잡고 있다. 예컨대 아이폰 케이스는 통상 2만~3만원이면 살 수 있지만 스와로브스키의 아이폰 케이스는 50만원에 팔린다.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즐겨마시는 블링 생수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물병에 담겨 40달러(750㎖)에 판매되고 있다. 스와로브스키는 500개가 넘는 기업과 협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활용

스와로브스키가 항상 성공만을 거뒀던 것은 아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이 되면서 큰 시련을 겪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국민 25%가 전쟁으로 사망했고,사치품인 크리스털에 대한 수요는 줄었다. 스와로브스키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전쟁 직후 유럽 지역의 공장이 많이 파괴돼 기계 설비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는데,세공기계를 만들어 본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아예 기계를 만들어 판매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 세공기계를 변형시켜 다양한 연마 · 절단 기계를 만들었다. 이 사업이 성공을 거두자 '티롤릿'이라는 접합연마기계 생산 자회사까지 만들었다. 티롤릿의 매출은 지난해 5억유로로 스와로브스키의 전체 매출(26억6000만유로) 중 18%를 차지했다. 스와로브스키는 지금도 새 시장을 개척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