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에어부산 '조종사 스카우트' 또 충돌
입력
수정
대한항공 이어 계열사 진에어도 2명 채용"대형 항공사가 후발 항공사가 공들여 키운 조종사를 뽑아가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난다. "(에어부산)
"조종사 빼가기" vs "직업 선택의 자유" 논란
"회사를 옮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직원 처우를 개선해라."(진에어)대한항공과 자회사 진에어가 아시아나항공 계열의 에어부산 출신 조종사를 잇따라 채용하면서 대형 항공사와 저가 항공사(LCC) 간 '조종사 빼가기' 논란이 재점화됐다.
1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8월과 올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에어부산 부기장 출신 조종사 5명을 채용한 데 이어 이달 들어 자회사 진에어가 에어부산 조종사 2명을 스카우트했다. 에어부산과 진에어는 이날 반박에 재반박 자료를 내는 등 하루 종일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신생 항공사 살 길 없다"에어부산 측은 "대한항공과 진에어가 빼간 인력은 에어부산이 자체적으로 양성한 1기 조종사들로 의무복무기간 4년을 채우지도 않았다"며 "최소한의 상도의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항공사들은 조종사 수급 안정을 위해 기본 훈련 후 4년의 의무복무기간을 두는 게 관례인데 이를 어겼다는 얘기다. 1000시간 이상 비행 경력을 갖고 있는 부기장을 육성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총 2억여원.'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이를 허용하면 신생 항공사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결국에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에어부산 측 지적이다.
에어부산 측은 또 "LCC의 평균 부기장 연봉은 대형 항공사의 80~90%인데 이번 이직자들은 대한항공 부기장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대한항공이 자회사를 앞세워 또다시 에어부산 조종사를 빼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더 나은 조건의 회사로 옮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권리라고 반박했다. 회사 관계자는 "진에어의 조종사 채용과 육성은 100% 진에어에서 주관하고 있다"며 "스카우트한 것도 아니고 공개채용 형태로 이직한 것인 만큼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진에어 관계자 역시 "에어부산 출신 조종사가 제주항공으로도 3명 이직했다"며 "에어부산의 처우,근무환경,기업문화 등에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민항기 조종사 1600여명 부족
조종사 이직을 두고 항공사 간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국토해양부는 기업 간 마찰에 끼고 싶지 않은 눈치다. 국토부는 지난 4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7개 항공사 관계자들을 모아 간담회를 열었으나 '상호 양보하자'는 애매모호한 결론이 나왔을 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직은 개인의 자유고 의무복무기간 규정 등은 항공사에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여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내 조종사 인력 수급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한 항공사 간 조종사 쟁탈전과 이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형 항공사와 LCC들이 신규 항공기를 도입하고 취항지를 늘리면서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2016년까지 약 1600명의 조종사가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개별 항공사들에만 조종사 양성과 수급을 책임지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안정적인 조종사 수급을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