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인터뷰] "음악·미술·문학의 도시…빈은 정신의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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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펴낸 박종호 씨
세 집 건너 한 집이 베토벤 집…말러 알려면 클림트 이해해야…예술가들 발자취가 고스란히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박종호 지음|김영사|280쪽|1만5000원
"빈이 음악의 도시라고요?미술을 모르고 빈의 음악가를 알 수 없고,음악을 모르는 채 빈의 화가들을 이해할 수 없죠.클림트를 알아야 말러를 이해할 수 있고,말러를 알아야 클림트를 즐길 수 있어요. 그런 도시가 1900년의 빈이죠.빈은 도시라기보다 '정신의 덩어리'예요. "
정신과 전문의 겸 오페라 평론가로,국내 최초 클래식 전문공간 '풍월당'의 대표로 유명한 박종호 씨(51)가 오스트리아 빈 예술견문록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김영사,280쪽,1만5000원)를 펴냈다. 그는 1900년 세기말 빈을 문화 예술의 도시로 화려하게 꽃피우고 사라져간 수십명의 예술가들의 인생 자취를 찾기 위해 지난 수년간 열 차례도 넘게 빈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가 만난 건 음악가의 숨결만이 아니다. 건축,미술,문학 등 문화예술 분야의 모든 예술가와 대화했다. 오스트리아 실내 건축 양식을 표방해 만든 서울 강남구 풍월당의 카페 '로젠카발리에'에서 그를 만났다. "빈을 여행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외곽의 중앙묘지에 가는 겁니다. 상점에서 꽃을 두 송이 사고,브람스와 슈베르트 등 음악가의 묘역에 헌화를 하죠.나의 빈 여행 기간 최고의 연주를 접하는 행운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하면서…."
아름다운 역사의 현장에서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깊고도 넓다. 벨베데레 부근,제체시온 부근,오페라 부근,알베르티나 부근 등 총 10개 구역으로 나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림과 역사,음악,인물들을 담아냈다. 예술가들의 삶과 빈의 역사 속 에피소드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빈을 여행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클림트는 프로이트에게 정신상담을 받기도 했죠.빈의 영원한 보헤미안이었던 작가 알텐베르크는 종이를 살 돈이 없어 평생을 카페 첸트랄에 있는 냅킨,메뉴판에다 글을 끼적였어요. 지금도 그 카페에 가면 등신(等身) 인형이 앉아 있어요. 현대적 건축물의 원조이자 근대 건축의 분수령이 된 로스하우스는 언론과 경찰의 공격으로 더 유명세를 탔어요. "그는 음악,건축,문학,미술의 대가인 네 남자의 사랑을 받았던 빈의 마지막 황후 알마 말러 이야기도 했다. 빈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소소한 정보도 놓치지 않았다. 비엔나커피가 없는 비엔나에서 '아인슈패너''브라우너''멜랑주' 등 기호에 맞는 커피를 주문하는 법,커피가 가장 맛있는 100년 전통의 '카페 하벨카'를 제대로 즐기는 법,위대한 두 화가 클림트와 실레가 처음으로 만난 카페 무제움에서 즐기는 방법까지 섬세하게 담았다.
"빈에는 스산하고 멜랑콜리한,특유의 약간 퇴폐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추운 날의 빈이 더 감동적이죠.단,적응해야 할 게 하나 있는데 처음 가 보면 사람들이 좀 불친절하다는 걸 느낄 거예요. 굳이 친절로 포장하지 않아도 '우리 것 진짜 죽이거든' 하는 눈빛으로요. 좀 얄밉지만 진짜 최고의 퀄리티를 내놓으니까 불평할 수가 없죠."
그는 책 말미에 베토벤의 집을 찾는 여정을 담았다. 수많은 베토벤의 집 중 절망과 위로의 자취가 남아 있는 하일리겐슈타트를 찾아 기록했다. "빈에는 베토벤의 집이 너무 많아요. 그는 늘 집을 빌려 살고 이사를 다녀 한 번도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진 적이 없거든요. 빈에서만 적게는 35번,많게는 80여번 이사를 했다고 하니까 세 집 건너 한 집이 베토벤의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그런데 제가 빈에 머물던 어느날 갑자기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 떠올랐어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라고 쓰인 도록이었죠.젊은 시절 청력을 잃어가며 절망했던 그가 서른두 살에 그곳에 요양하러 왔을 때 병에 차도가 없어 매일 유서를 썼던 곳.그곳에서 베토벤의 '데스마스크'를 봤어요. 베토벤도 죽기 전에는 모든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초라한 노인의 얼굴이더군요. 아무리 위대한 생을 산 사람도 죽을 때면 다 똑같은가 봅니다.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