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서류들, 돈 주고 만든 거 다 압니다"
입력
수정
● 대입 수시 1주일 앞두고 바빠진 입학사정관들"책을 낸 경험이 있으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유리하다는 소문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너도나도 책을 냈던 적이 있습니다. 장래희망으로 인권변호사를 쓰던 게 대세였던 때도 있었어요. 작년에는 역경 극복을 강조한 학생이 많아 서류를 보면 하나 걸러 아버지 사업이 망했거나 이혼한 집이더라고요. "
사설업체 의존, 비슷한 내용 많아…대교협 '표절방지시스템' 활용 예정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2012학년 입학사정관 전형을 앞두고 만난 서울지역 A대 선임 입학사정관의 말이다. 학생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에 내는 서류에도 매년 유행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제 대학 사정관들이 트렌드를 중점적으로 보는 게 아닌데도 그렇게들 낸다"며 "입시 컨설팅 업체들 사이에서 생겨난 유행을 학생과 학부모가 따라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와 인터뷰 중에도 한 학부모가 입학사정관실을 찾아왔다. 그 학부모는 "올해 트렌드는 전공 적합성"이라며 선임 입학사정관도 모르는 올해 선발 포인트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고 갔다. 2012학년도 대입 입학사정관 전형 시작이 1주일 남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000여명 늘어난 3만8169명의 신입생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다. 입학사정관제는 대학에서 학생을 뽑을 때 학과성적 위주의 획일적인 평가 대신 학생의 잠재력을 보자는 의도로 2008년 시작됐다. 사교육 의존도를 줄여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도 있다.
그러나 사설 입시전문 업체들은 제출 서류의 유행을 만들어낼 정도로 입학사정관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입학사정관제'를 검색하면 '수시 100% 합격''1% 인재를 위한 자녀교육의 명품컨설팅' 같은 문구를 내건 사설업체 광고가 화면을 덮는다.
입학사정관은 전직 기간제 교사나 교육 관련 석 · 박사 학위 소지자가 다수다. 구성이 다양해 대학 강사나 전직 기자,일반 교직원 출신도 있다. 연봉은 사립대의 경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정한 권고선(석사 3500만원,박사 4500만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 · 공립대는 공무원 보수규정에 준해 2700만~3700만원 선.교육 현장과 학생의 심리에 밝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사설업체의 도움을 받은 지원서류를 가려낸다. B대 사정관은 "학생이 직접 만든 서류와 업체가 만든 서류는 차이가 많이 난다"며 "학생다운 진솔함이 없는 자기소개서들은 일단 의심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형식이 비슷한 서류들,지나치게 잘 꾸며진 서류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사정관들이 서류평가를 할 때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중심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소개서 등은 사설업체가 만들어줄 수 있지만 학생부는 학교 외에는 접근할 수 없다. C대의 사정관은 "자기소개서는 잘 쓰면서 본인 학생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학생이 20~30%"라며 "이 경우 불이익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대교협은 이달 안으로 입학사정관제가 시행 중인 60개 대학에 표절방지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계획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예전에는 교차확인 범위가 대학별 서류로 국한됐지만 이제 이 소프트웨어를 쓰는 대학 전체로 넓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정관들의 이런 노력이 결실을 제대로 낼지는 미지수다. 정성적 평가의 대명사로 꼽히는 입학사정관제지만 정작 사정관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학생의 서류에 점수나 등급을 매기는 일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