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어설픈 포토샵

1920년 프란시스 그리피스라는 영국인이 찍은 사진에 숲속의 요정이 등장했다. 예쁜 소녀 옆에 자그마한 요정이 날개를 펴고 나뭇잎 위에 사뿐히 서있는 모습이다. 지금 보면 합성이 뚜렷하지만 당시엔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셜록 홈스'의 작가 코난 도일까지 사실 규명에 나섰다. 60여년이 지나서야 사진 속 소녀가 조작임을 자백했지만 찍은 이는 끝까지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1969년 나사가 공개한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 사진도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옛 소련과 치열한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던 미국이 사기극을 폈다는 음모론이었다. 록 그룹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애비 로드'의 재킷 사진도 조작됐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폴 매카트니가 들고 있던 담배가 지워진 탓이다. 흡연이 청소년들에게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단다. 사진 조작을 밥먹듯 한 건 역시 독재자들이다. 스탈린은 자신이 레닌 바로 옆에 있는 사진을 여러장 만들어 뿌렸다. 레닌의 후계자라는 것을 널리 알리려는 속셈이었다. 레닌도 대중 연설 사진에서 반대 세력들의 모습을 모두 지워버리곤 했다. 사진 속 시위 군중 수를 부풀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히틀러도 필요할 때는 사진 속 인물을 가차없이 들어냈다. 그 중엔 파울 괴벨스 같은 최측근도 포함됐다.

북한도 뒤지지 않는다. 1945년 김일성 귀국 환영대회 사진 뒤편에는 소련 장교들이 죽 늘어서 있었으나 나중엔 사라져 버렸다. 주체사상을 내세우며 소련 그림자를 털어내려 했던 거다. 2008년 11월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사진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영국 더 타임스가 내놨다. 김 위원장 그림자만 똑바르고 좌우 군인의 다리 그림자는 비스듬했던 까닭이다.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하던 김 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북한이 며칠 전 대동강 범람 사진을 조작한 데 대해 말들이 많다. 통상 수해를 축소 은폐해왔으나 이번엔 부풀렸기 때문이다. 당장 식량난이 심각하지 않은 점으로 봐서 다른 저의가 있다,김일성 출생 100년이 되는 내년 주민 선물용 식량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등 해석이 분분하다. 수해 같은 '이벤트' 없이는 국제사회 지원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아 피해를 과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설픈 포토샵으로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대외 원조에 기대야 하는 북한의 처지가 딱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