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50년 전 '牛骨塔'의 교훈

일자리 없는 고학력은 사회불안…내수증진·中企 육성책 강화해야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아직 많은 국민이 농민이었던 1950년대에 집안의 가장 큰 자산인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물론 대학에 보낸 자식이 그에 걸맞은 직장을 구했으면 이런 이름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게 대학은 보냈는데 막상 졸업할 때 일자리는 없으니 그렇게 불린 것 아닌가.

지난 50여년간 한국 고도성장의 주 요인으로 흔히 교육을 든다. 광복 이후 교육 수준이 폭발적으로 올라가 1960년대 초에는 선진국과 맞먹을 정도가 됐다. 그것을 기반으로 1960년대 중반 이후 고도성장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교육으로 인적 자원의 '공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고도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적 자원을 '수요'해주는 메커니즘,즉 일자리를 만드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면서 교육 수준만 올라간다면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를 불안하게 해 경제성장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 초 한국이 4 · 19 같은 격동을 겪은 것은 '우골탑'으로 표현되는 경제 상황이 큰 원인이었다. 물론 4 · 19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시위도 그 진짜 이유는 일자리라는 분석도 있다. 1960년대 초 일자리 문제는 그후 고도성장으로 해소됐다. 노동집약적 공산품(工産品) 수출로 일자리를 대거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골탑'이라는 용어는 사라졌다. 소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낸 농민이 결국 '본전을 찾은' 것이 1960년대 한국의 모습이다. 이것은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1960년대 중반 고도성장이 시작된 이후 위기가 몇 차례 있었지만,그것을 단기간에 극복하면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 메커니즘을 만들었다. 그러나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에는 그렇지 못했다. 성장률 자체가 반 토막 난 데다 낮아진 성장률도 그나마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한때 지속적으로 유지된 고환율 덕에 수출은 늘고 있지만,이제 수출은 더이상 예전 같은 일자리 창출의 동력이 되지 못한다. 자본집약적 중화학공업 제품이 수출업종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고용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그 주체는 역시 자본집약적 생산 방식을 쓰는 대기업인 것이다.

일자리 부족이 십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동안 한국인의 학력은 계속 상승했다. 그 결과 지금 한국은 '우골탑'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던 1960년대 초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80% 이상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진학해도 일자리가 없는 사회가 안정적일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인식 못한 것은 아니다. 지난 몇 개월간 등록금 인하,대학 구조조정,복지 확충 등 온갖 논의를 해 왔다. 그런 것은 모두 필요한 조치다. 등록금이 세계에서 두세 번째로 비싼 것은 일자리와 무관하게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대학 진학률이 2위와 비교가 안 되는 세계 1위인 현실은 분명히 고쳐야 한다. 아직 선진국에 비해 불완전한 복지도 더 확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일자리다. 등록금이나 복지도 일자리 창출로 재정 수입을 늘릴 수 없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은 물론 위기 후 바뀐 현실을 반영해 내수 증진과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일자리에 있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