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ㆍ연평도 사과 안 하면 대화 없다더니…

남북 외교장관 회동, 북미대화도 재개…'8월 대전환說' 불 지펴
"北에 도발 면죄부 주나" 정부 안에서도 반발…6자회담 아직 갈 길 멀어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들의 발걸음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가 31개월 만에 만난 데 이어 남북 외교 장관이 3년 만에 회동했다. 특히 북한의 핵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28일께 미국 뉴욕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북 · 미 대화도 임박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달 8 · 15 경축사에서 대북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등 '8월 한반도 대전환설'마저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24일 "북한이 핵무기 생산과 실험을 중단하는 등 비핵화를 위한 예비 조치가 없는 한 6자회담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천안함 · 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없는 한 남북이 마주앉지 않겠다던 정부가 약속을 깼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북 · 미,1년7개월 만에 대화

미국에 가는 김 부상은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비롯한 북핵 협상 관련 고위 당국자들과 1년7개월 만에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상의 방미는 남북회담 성사에 이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두 번째 단추를 끼우는 단계에 진입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은 내심 북한과의 대화가 시급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 때문에 남북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렇지만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에선 북핵 문제에서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도 임기 후반 대북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5기 출범 회의에 참석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사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해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시사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도 경제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데다 세습 체제 구축을 위해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8월 대전환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靑 "이제 시작에 불과"

하지만 청와대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한 핵심 관계자는 "대북 문제는 비핵화와 남북관계 투 트랙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도 북한과 강한 대화 의지를 갖고 있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이전부터 조건으로 내걸었던 비핵화 예비 조치에 대해 북한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핵화 예비 조치는 △핵무기 생산과 실험,로켓 발사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우라늄 농축 시설 조사 △IAEA의 영변 핵시설 복귀 등이다. 천안함 · 연평도 사과 문제도 6자회담 재개의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일단 비핵화가 아닌 남북관계를 다루는 회담에서 사과를 받아낸다는 분리 대응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이 비핵화 논의에 착수했다고 해서 천안함 · 연평도 문제에 면죄부를 주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정부 내에서 조차 우려의 시각이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분리 대응한다고 하지만 사과 없이 북핵 회담을 재개한 데 대해 국민들이 용납할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더군다나 북 · 미 대화가 진전되면 남측으로선 북핵 6자회담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6자회담 재개까지는 관련국들간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영식/김정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