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복지에 취한 그리스…구제금융 받은 날에도 파업"

"정치인들 복지공약 남발…票와 맞바꿔"
지난 21일 그리스 아테네의 에르무 거리는 쇼핑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그리스 상점 대부분은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할인판매를 실시한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1586억유로(240조원)의 추가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이날 서울 명동에 해당하는 에르무 거리는 평상시와 다름 없이 활기가 넘쳤다.

카프니카레아 성당 앞에 앉아 쉬고 있던 직장인 진가노 루가스 씨(54)에게 나라의 미래가 걱정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원래 여름휴가로 해마다 4주를 쉬었는데,올해는 2주일밖에 못 쉴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자 때문에 지난해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이것으로도 모자라 EU와 IMF에 또다시 손을 벌렸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그리스에 제한적 디폴트(default · 채무 불이행) 등급을 부여하기로 했다. 추가 구제금융 진척에 따라 다시 투기등급으로 올리겠다고 했지만,그리스 국민들에게서는 절박함이 묻어나지 않았다. 그리스 은행원들은 평소처럼 오전 8시15분에 출근해 오후 1시에 퇴근했다. 관공서도 7~8월 하절기에 맞춰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만 일한다.

그리스 택시기사 노조는 추가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이날도 파업을 벌였다.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업종 진입장벽을 없애기로 하자 복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택시기사들이 파업으로 대응한 것이다.

디미트리오스 카치카스 유럽외교정치연구소(ELIAMEP) 연구위원은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은 군사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화를 이룬 뒤 정당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노동권과 경쟁적으로 결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정치인들이 시장 상인처럼 복지를 흥정 가능한 물건으로 여겨 표와 맞바꿨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국민들이 정부의 과도한 복지 제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자신들의 이익을 침해받으면 즉각 저항한다"고 덧붙였다. 여당인 사회당의 코스타스 카르탈리스 의원은 "그리스는 이제 다른 나라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며 "그리스 경제위기가 최소 10년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테네=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