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누가 우리 치즈를 가져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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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에 따라 삶의 질 달라져1990년대 말 인도네시아에서 사람들이 중국인 소유의 상점들을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심한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로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한 끼 정도밖에 먹지 못하자 인도네시아의 상권(商權)을 쥐고 있는 중국인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가 심한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을 겪은 것은 통화정책의 잘못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책임을 엉뚱하게 중국인들에게 돌렸다.
돈 풀고 물가잡기…기업만 덤터기
사람들은 통화정책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른다. 통화정책은 그저 금리나 물가,고용,생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족,친구,자신의 능력과 기술,건강,직업,직장 등이 우리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듯 한 국가의 통화정책에 따라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 좋은 통화정책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지만 나쁜 통화정책은 우리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좋은 통화정책이란 화폐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해가는 정책이다. 나쁜 통화정책은 화폐를 변덕스럽게 공급하거나 지나치게 많이 늘려 화폐가치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초(超)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정책이다.
통화 증가율을 계속 올리는 경우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이런 나라에서는 빵 한 덩어리,닭고기 한 근,설탕 한 봉지,아이스크림 한 개를 사기 위해 수레나 트럭으로 돈을 싣고 가야 한다. 이런 국가에서는 생산 활동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남보다 먼저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확보하기 위해 아귀다툼이 벌어진다. 독서,음악 감상,스포츠와 같은 삶의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렵고,그것을 즐기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일 뿐이다.
실제로 최근 화폐를 마구 찍어내 물가상승률이 연 2만5000%를 보인 짐바브웨와 제1차 세계대전 후 물가 상승률이 한 달에 1000% 이상이었던 독일 국민들의 삶이 그러했다. 화폐 공급을 무분별하게 '늘렸다 줄였다' 하는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과 실업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이것은 우리가 점심으로 먹는 자장면,칼국수,된장찌개 등의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뜻하고,반찬값이 올라 저녁 식탁이 초라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 잡기가 어려워지고 아버지,삼촌,형,누나들의 직장이 위태로워짐을 뜻한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고 지속되면 사회 폭력과 정신질환이 늘어난다. 실제로 통화정책의 잘못으로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일본에서는 불면증과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다고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금리를 인하하며 많은 유동성을 풀었다. 미국은 1조8000억달러,영국은 1484억파운드,일본은 33조엔,유럽은행은 4314억유로를 공급했다. 우리나라도 150조원가량 풀었다. 세계 각국이 무분별하게 풀어낸 유동성 때문에 지금 전 세계가 경기침체 속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1~6월 연속 4%를 넘어섰다. 체감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다. 서울지역 기름 값은 ℓ당 평균 2000원을 넘어섰고,전셋값은 올 상반기에만 전국적으로 7.35%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공식 실업률은 3.7%지만 체감으로 느끼는 실업률은 2.5배에 달하는 9.1%나 된다.
이런 판국에 정부 관료들은 물가를 잡겠다고 정유사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라면 가격,음식점 설렁탕 가격 등을 통제하느라 부산하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처럼 원인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있는데 엉뚱하게 기업들에 덤터기를 씌우고 있는 것이다. 하릴없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요즘 들어 세금 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대학원장 / 객원논설위원 >